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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Apr 15. 2021

발 없는 김밥

김밥 전문점이라는 특이한 전문점은 언제 생겼던가. 요즘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김밥 전문점(과거의 분식집)은 김가네라는 체인점이 아닐까 한다. 바르다 김선생도 있지만 수적으로는 김가네가 더 많아 보인다.


10여 년 전에는 이들보다 강력한 브랜드도 있었다. 김밥 천국. 세상에, 김밥과 천국이라는 두 단어를 조합해서 하나의 상호를 만들다니. 특정 종교와 연관됐다는 소문보다 더 강력한 이 김밥집의 특징은 아주 저렴하다는 것이었다. 가장 싼 김밥 가격이 천원. 천원 앞에 수식어를 빼먹었다. 단돈 천원. 저가 전략이 먹혔는지 우후죽순처럼 동네마다 생겨났다. 지상에 천국이 도래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 그 많던 ‘천국’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


천국보다 더 오래된 가게도 있었다. 종로김밥. 아마도 이 상호가 김밥 체인점의 첫 번째가 아닐까 싶다. 이 체인점과 종로 거리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었을까. 종로에 있던 종로서적과는 무언가 다른 사연이 있었겠지. 이 종로김밥도 내 초등학교 시절인 6, 70년대에는 없었던 것 같다. 그 시절 김밥은 지금처럼 먹을 게 없을 때 대충 한 끼 때우는 음식이 아니었다. 주로 소풍날 먹는 별식이었다.


특별한 음식인 만큼 만드는 과정도 단순하지 않다. 밥을 식초에 버무려야 하고, 안에 들어가는 재료를 하나하나 준비해야 한다. 달걀, 단무지, 우엉, 시금치, 당근, 오이, 볶은 고기, 소세지나 햄 등등. 김이 펼쳐지고, 거기에 밥과 온갖 재료를 얹은 다음 옆구리가 터지지 않게 만다.


신데렐로가 만든 깁밥. 속 재료의 모습이 불안해 보이고, 몇 개는 옆구리가 터질 것 같다.  맛은 괜찮았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김밥에는 특징이 있었다. 볶은 소고기가 들어가는 것이다. 양이야 많지 않지만, 김밥에 들어가는 고기는 김밥 전체를 지배한다. 어머니의 정성 김밥의 한 가지 단점은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다. 하긴 여러 명의 자식들 김밥을 한꺼번에 싸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었겠는가.


어머니의 김밥을 기억하는 나는 김밥 전문점의 김밥 싸는 아주머니(김밥 싸는 아저씨도 있을 법한데 이제까지 한 명도 못 보았다)들을 특별한 눈으로 쳐다본다. 관심의 주안점은 ‘어떻게 저렇게 빨리 쌀까?’하는 것이다.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솥에서 밥 한 주걱을 푹 뜬다. 펼쳐진 김 위에 놓고 빠르게 밥을 눌러 편다. 주문된 김밥 종류에 따라 들어갈 재료를 넣는다. 참치, 볶은 멸치, 볶은 소고기, 그리고 기본에 해당하는 단무지와 당근, 부친 달걀 등등. 재료를 넣는 행위도 아주 빠르다. 이 전문가의 행위에서 김밥은 옆구리가 터지지 않는다. 아주 드물게 옆구리가 터질 경우, 조각 김을 덧대서 수술을 한다. 그것 역시 놀랍다.


김밥을 한 줄만 사는 사람은 별로 없는지 말게 되면 적어도 두 줄 이상은 만다. 다음은 썰기. 두 줄의 김밥에 기름을 바른다. 두 줄의 김밥을 정렬한 다음 한꺼번에 두 줄을 썬다. 다시 한 번 전문가의 느낌이 풍겨난다. 그리고는 준비된 종이 상자에 넣기. 여기까지가 김밥 만들기의 과정이다. 나야 놀랍다고 길게 서술했지만 하루 종일 김밥 싸기를 반복하는 사람에게는 지루한 단순 노동일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무한 반복의 이 과정이 나를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


늘 가던 김밥 가게에서 김밥 두 줄을 주문한 나는 영혼이 없는 눈빛으로 김밥 싸는 아주머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낯이 설다. 보통 김밥 가게 아주머니들보다는 훨씬 젊어서 내공이 조금 부족해 보이는 그 아줌마(?). 그런데...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이 거기서 펼쳐졌다. 김밥을 마는 데 필수요소인 발이 없는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가늘고 긴 대를 줄로 엮거나, 줄 따위를 여러 개 나란히 늘어뜨려 만든 물건’이라고 정의한 발.  


소풍날이면 부엌 어딘가에 숨어있다 어김없이 나타나서 김밥을 말던 발. 아줌마는 그 발 없이 도마 위에 김을 펼쳐놓은 후 김밥을 말고 있었다. 오래 전 전설 속에 존재하다 사라져버렸다던 ‘무발 신공’ 김밥 말기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발 없이 김밥 마는 모습은 그날 처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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