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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Apr 19. 2021

양념갈비 vs 생갈비

결혼할 때 우리 부부는 식성이 많이 달랐다. 연애할 때 아내가 설렁탕을 처음 먹어본다고 했던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나는 처갓집에서 육개장 비슷한 ‘소고기국’을 처음 먹어보았다. 오그락지라는 반찬도 몰랐고 갱시기도 처음 보았다. 아내는 토란을 처음 먹어보았고, 내가 사랑하는 뱅어포를 징그럽다고 멀리했다. 아내는 어묵을 모옵시 좋아했고, 나는 그저 그랬다. 아내의 성화에 일부러 고속도로 휴게소까지 어묵을 먹으러 간 적도 있다.


나는 감자를 병적으로 좋아했고, 아내는 마지못해 먹는 정도였다. 나는 삼시 세끼, 이틀간 여섯 끼 정도는 감자만 먹으라고 해도 아마 먹을 것이다. 이렇게 다른 식성 때문에 여러 차례 다투기도 했다. 만약 계속해서 자기주장만 내세웠다면 아마 사달이 났을 것이다. 미숙한 부부였던 우리는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음식을 튜닝했다.


지금은 이렇다.

토란국 국물만 먹던 아내는 이제 건더기도 잘 먹는다. 나는 소고기국을 더 이상 멀리하지 않는다. 오그락지가 무말랭이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음식을 책임진 후 간혹 갱시기를 만들기도 한다. 이 성의를 놓고 아내는 오리지널과 다르다며 퉁박을 한다. 그래도 잘 먹는다. 아내는 프렌치프라이와 감자채나물 정도는 좋아하지만, 다른 감자 반찬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어묵을 예전보다 더 좋아하게 되었고, 아내는 전처럼 광적으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내가 가끔 만들어주는 어묵탕에 아주 만족해한다.


끝으로 한 가지 더. 결혼 초에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던 닭갈비(철판볶음식)와 하얀 순두부를 춘천과 강원도 일대를 두루 돌아다니며 함께 찾아먹는다.  


이렇게 아내와 내가 식성을 조율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해피엔딩이 아니라 해피 ing인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쓸 데 없이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추억에 취해서 여기서 이야기할 것을 시작도 안 했다. 고기 이야기다. 돼지고기를 못 먹는 사연은 앞서 얘기했다. 이제 소고기 이야기를 할 차례다.


아내는 고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나는 돼지고기도 안 먹지만, 소고기도 좋아하지 않아서 별로 즐겨먹지 않았다. 아내는 고기를 그냥 구워먹는 걸 좋아했다. 나는 소금구이를 조금 먹기는 했지만 그밖에는 양념에 잰 불고기만 먹다시피 했다. 그것도 고기는 많이 안 먹고 고기 국물에 밥 비벼 먹는 것을 좋아했다. 둘 사이의 접점은 옛날에 사용하던 구멍 뽕뽕 뚫린 불고기 철판에 대한 기억 정도였다.


사진 출처 : Pixabay


그러자니 불고기와 구운 고기 사이에도 갈등이 있었다. 이 갈등은 내가 아내를 따라 구운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서 가라앉았다. 결혼 3~4년 무렵 아내의 영향으로 내가 고기 먹는 훈련이 되면서 한동안 고기를 많이 먹었다. 집에서 소고기를 구워먹을 때 저녁 식사 한 끼에 한 근(600g)이 훨씬 넘는 소고기를 먹은 적도 있다. 나야 술 먹는 재미에 고기도 먹은 것이지만, 아무튼 둘이서 상당량의 고기를 먹었다.


그 무렵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외식할 때면 나는 양념갈비를 골라 먹었는데, 고기 먹을 줄 모른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하긴 나도 이상한 게 있긴 했다. 손도 많이 가고 양념 만드느라 재료비도 더 들었을 텐데 왜 양념갈비가 더 싼가 하는 점이었다. 답은 의외였다. 생갈비 고기의 질이 양념갈비보다 더 좋다는 것이 이유였다. 둘 사이에 서로 다른 고기를 쓴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한동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고기 음식점마다 예외가 없는 것을 보고 확실히 알았다. 양념갈비는 양념으로 무언가를 가릴 수 있는 것이다. 생갈비는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그 후 아주 가까운 사람이 갈비 집을 할 때 설명을 직접 듣고는 더 이상 의문을 갖지 않았다.


갈비뿐만이 아니다. 불고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불고기하면 한 종류를 생각했는데 언제부턴가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생불고기도 있고, 버섯생불고기도 있고, 양념불고기도 있고. 이때는 나도 알았다. ‘생’자 들어가는 고기가 비싸다는 것을.


나는 장모와 함께 고기를 먹으러 간 자리에서도 내 식성을 굽히지 않고 양념갈비를 시켜먹었다. 장모님은 불만이 컸다. 어차피 돈 쓰고 먹는 외식인데, 질 좋은 생갈비를 마다하고 어리석게 양념갈비를 먹는 사위를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돼지고기를 안 먹는다는 두 사람 사이의 유대가 얇은 방어막 노릇을 해 주었다. 중과부적, 어린 조카가 나를 쫓아서 덩달아 양념갈비를 먹은 것도 조금은 도움이 되었다. 그 조카와 나의 양념갈비 동맹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요즘은 불고기나 갈비도 집에서 해먹기 쉬워졌다. 고기 양념을 마트에서 라면 고르듯 고를 수 있다. 이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불고기 양념이나 갈비 양념이나, A사 제품이나, B사 제품이나 차이를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여기서 나는 절충을 시도한다. 배를 갈아 넣고, 동시에 배 때문에 강해진 단맛을 줄이기 위해 진간장을 조금 더 넣는 것이다. 정성이 뻗치면 양파를 더 썰어 넣거나 파를 숭숭 썰어 넣거나 마늘을 더 넣기도 한다.


한우와 수입소고기 중 어느 것이 좋은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을 개진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잠깐만 검색해도 다 소화하기 어려울 만큼의 TMI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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