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선호하는 양상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요즘 사람들은 스테이크를 먹는 일이 전보다 훨씬 잦아졌다. 나처럼 고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1년에 몇 번 정도는 스테이크를 먹으니까 말이다. 고기 매니아가 아닌 사람답게 나는 등심보다 안심 스테이크를 좋아한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부드럽기 때문이다. 굽기는 미디엄웰을 선호한다. 피가 비치는 게 싫기 때문이다. 아내의 스테이크를 떼어 먹어보면 더 맛있다고 입에서는 느낀다. 미디엄이나 미디엄레어다. 그래도 피가 보이는 건 싫다. 싫은 건 싫은 거다.
나처럼 고기 비전문가에게 아주 쉽게 고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식당이 있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 있던 식당인데 그 규모가 아주 컸다. 새로 문을 열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식당을 찾았다. 깨끗하고 친절했다. 주 메뉴가 궁금했다. 호텔 메뉴판처럼 두텁게 접힌 메뉴판을 갖다 준다. 펼쳐보았다. 어? 푸훗. 맨 위에 적혀 있는 메뉴 이름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고기.
누구의 발상인지 신선했고 기발했다. 나처럼 고기를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메뉴였다. 내가 그 메뉴를 선택하자 아내가 불만처럼 이야기했다. 평소 같으면 뭔가 또 의심할 꼬투리를 잡을 사람이 왜 그렇게 쉽게 선택하느냐는 것이다. 꼼꼼히 따져도 불만, 시원시원하게 결정해도 불만. 나는 어떡해야 하는가. 어쩔 수 없이 ‘설명충’이 되었다. 가격을 봐. 믿을 만하게 비싸잖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고기의 가격이 다른 고기들 수준밖에 안 돼 봐, 믿을 만한가. 아내는 억지라며 어이없어 했다.
나무접시 위에 고기를 담아 내왔다. 무게에 맞춰 내는 것이겠지만 양이 많지 않았다. 다른 고기보다 하얀 기름이 조금 많은 듯했다. 설명충이 된 김에 잘 알지 못하면서 괜히 아내에게 마블링이 어쩌구 한마디 했다. 고기를 구워서 먹어보았다. 좋은 고기였다. 부드럽고, 어금니로 베물자 육즙이 흘러나왔다. 씹는 맛이 있지만 질기지 않았다.
가격을 생각했다. 별로 아깝지 않았다. 요즘 같으면 질문이 하나 추가될 법 하다. 재방문 의사 및 메뉴 재 선택 의사가 있는가. 답은 그렇다 였다. 우리 부부는 그 고기를 ‘세맛고’로 줄여 부르기 시작했다. 비싼 가격 때문에 많이는 못 먹고 조금 더 시켜먹었다.
나오면서 물었다. 누가 이런 메뉴 이름을 지으셨나요. 주인인 중년 여성은 너스레를 떨지 않고 눈으로 웃었다. 더 묻고 싶었지만, 아내의 눈치가 보여서 그냥 나왔다. 집에 가는 길에도 세맛고에 대해 이야기했다. 고기의 질에 대해 이야기했고, 웃음을 자아내는 이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후로도 여러 차례 그 식당을 찾았다. 워낙 식당이 넓어서 사람이 많아도 복잡한 느낌은 별로 없어서 좋았다. 2~3년은 지난 것 같았다.
어느 날 식당 한쪽 공간에 어린이용 놀이 시설이 생겼다. 큰 갈비집들이 그런 것처럼 어른들이 식사하는 동안 아이들이 와서 놀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신호였나 보다. 그 놀이기구는 줄어드는 손님을 잡으려는 자구책이었던 모양이다. 오래지 않아 그 식당은 문을 닫았다. 세맛고는 먹을 만큼 먹었지만, 그 이름을 부를 일이 없어진 것은 아쉬웠다. 재미있는 이름이었는데...
그 후 더 비싸고, 더 질이 좋은 고기도 먹어보았다. 하지만 세맛고처럼 관심을 끄는 고기는 만나지 못 했다. 스테이크의 전성기처럼 여겨지는 요즘이지만 그런 독특한 고기를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드물게 기억하는 고기에 관한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