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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May 10. 2021

김밥견문

칼 없는 김밥

지난 번에 쓴 ‘발없는 김밥’의 댓글에 한 작가분이 ‘나도 발없이 김밥을 만다’는 의견을 주셨다. 내가 호들갑 떤 일이 누군가에겐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던 거다. 역시  세상은 넓고 놀랄 일은 많다. 혹시 이번에도 그런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조금 있지만... 내친 걸음이다.


지난 주 장보고 와서 나물을 세 종류나 만들었다. 부엌에서 오래 일했더니 반찬은 많은데 오히려 저녁밥이 하기 싫어졌다. 김밥으로 저녁을 때워야겠다고 꾀를 냈다(이것도 꾀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아내의 동의를 얻었다.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다시 문을 연 김밥집을 찾아갔다. 오랜만이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네 명이나 되던 김밥 마는 아주머니들이 사라졌다. 한 명만 남아 있다. 주방 일 하는 직원과 주문 받는 직원도 두 명밖에 없다. 일하는 사람이 총 세 명뿐이다.


오후 다섯시, 시간이 어정쩡해서 그런가. 그래도 그렇지 많이 썰렁하다. 오래 전이지만 이 가게가 개업했을 때는 일하는 사람이 열 명이 넘었다. 흔히 손님수보다 직원 수가 많았다. 지금의 변화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인지 이 김밥집의 경영방식 변화에 따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바뀐 것이 또 있다. 자동주문기(키오스크)를 써야 했다. 작동 방법이 비교적 단순하다. 처음 보는 기계지만, 능숙하게 주문을 했다. 햄버거 매장에서 훈련한 덕이다. 바깥 배너에서 본 김밥은 키오스크 메뉴에 없다. 늘 먹던 참치 김밥과 아내가 고른 소고기 김밥을 주문했다. 먼저 온 손님이 두 명뿐이라,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기계로 썬 김밥. 칼로 썬 김밥과 차이를 느낄 수 없다.


‘김밥 아주머니’가 김밥을 상자에 담는다. 먼저 와 있던 손님들이 그 김밥을 들고 가게문을 나섰다. 김밥 아주머니가 김밥 마는 테이블 오른쪽 끝의 모니터를 확인한다. 우리 차례인 모양이다. 다른 매장에서 발 없이 김밥 말던 모습이 떠올랐다. 김밥 마는 테이블을 보았다. 음, 여기도 발이 없군.


그때 흰 머리를 짧게 자른 ‘라떼 젠틀맨’ 한 명이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젠틀맨이라고 한 것은 후줄근한 나와 달리 복장이 깔끔해서다. 젠틀맨은 주문 받는 여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이 주문해놓은 먹을거리를 받아든다. 젠틀맨의 뒷모습을 보다가, 아주머니는 어떻게 발 없이 김밥을 마는지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어, 언제 김밥 위에 밥을 다 펼쳐놓았지? 젠틀맨을 쳐다본 건 아주 잠깐이었는데 그 사이에 벌써?


의문은 금방 풀렸다. 우리 김밥 하나를 말고 난 아주머니가 두 번째 김밥을 말 차례가 되었다. 나는 당연히 김을 꺼내 도마 위에 펼친 후 밥통에서 밥을 푸리라고 예상하는데 그 예상은 하나도 맞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테이블 오른쪽 끝에 있는 알 수 없는 기계의 버튼을 눌렀다.  밥이 얇게 펼쳐진 김이 복사기에서 복사 용지 나오듯 주욱 나온다. 조그만 복합기처럼 생긴 기계가 복사지 쏟아내듯 ‘김+밥’을 쏟아낸다. 한번 놀랐다. 아주머니는 두 번째 김밥을 금방 말아치웠다.


이제 썰 차례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 김밥 한 개를 이번에는 왼쪽 끝에 있는 용도 불명의 기계에 넣고 다시 버튼을 누른다. 어? 소리도 없이 김밥이 잘렸다. 잘린 김밥을 종이 상자에 넣은 아주머니, 다시 김밥을 얹었다. 버튼. 다시 잘린다. 김밥을 상자에 담는다. 끝이다. 두 번 놀랐다. 요새 말로 신박한 세상이다.


김밥 맛은 어떨까. 집에 와서 먹어보니, 다르지 않다(당연하지).


며칠 후, 김밥 만드는 기계에 대한 관심 때문에 같은 브랜드의 다른 김밥 가게에 들러보았다. 그곳에는 그 신문물들이 없다. 김밥 마는 사람이 아주머니가 아니고 아저씨라는 점이 좀 특이했다. 그 아저씨도 발없이 김밥을 말고 있었다. 기계화된 먼저 김밥집에 직원이 없었던 건 어정쩡한 시간 때문이 아니라, 기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요즘, IT 관련한 새로운 정보 때문에 지식 욕구가 자극을 받았다든지, 뒤늦게나마 네비게이션의 운영 원리를 이해해서 정보의 지평을 넓혔다든지 하는 게 아니라 김밥 마는 걸 보고 놀란다. 현금 사용하지 않는 세상을 보고 너무 변화가 빠르지 않는가 생각한다. 그래서 라떼맨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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