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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Apr 08. 2021

칼의 본능

수천 년 전 인간들이 사용하던 것과 똑같은 도구가 지금도 부엌에서 그대로 사용된다. 


바로 칼이다. 


박물관의 석기시대 전시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칼이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본성에 변화가 없는 놀라운 도구. 


구석기시대의 거친 돌 도구들이 신석기시대로 넘어오면 세련미가 차고 넘친다. 그 가운데 백미는 돌칼이다. 나처럼 재주 없는 사람은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균형 잡히고 미려한 모습의 돌칼. 생활도구나 살인 무기가 아니라, 아름다운 예술품에 가깝다. 청동기 시대의 쇠칼은 철기시대의 그것보다 오래 되었지만, 보존 상태가 훨씬 좋다. 바스러진 쇳조각에 불과한 쇠칼보다 원래의 모습을 더 잘 간직한 청동검. 신석기 시대 돌칼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는 이 칼들도 역시 예술 작품 같은 느낌을 준다. 


다른 사람을 공격해서 상하게 하는 게 목적인데, 그처럼 아름답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도구의 소중함과 희소성 때문인가. 그 당시 인간들이 사용하던 도구 가운데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칼은 그렇게 모양에 큰 변화가 생기지 않은 채 오늘날까지 수천 년을 살아온다. 모양과 달리 존재 이유에는 변화가 생겼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음식을 만들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 되었다. 하지만, 칼의 내면 어딘가에는 원초적 본능이 남아있어서 인간에게 근본적인 공포심을 자아내는지 모른다. 


내가 아내로부터 주방을 넘겨받으면서 당연히 아내가 쓰던 칼도 넘겨받았다. 아내가 결혼 직후부터 사용했는데, 이름을 대면 알 만한 독일제 칼이었다. 칼 몸통에 새겨진 흐릿해진 로고를 보면 더 쉽게 알 수 있는 칼이다. 내가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칼이 망가졌다. 손잡이의 플라스틱 부분이 조금 깨진 것이다. 30년 가까이 사용했으니 망가지는 것도 이상할 게 없지만 못내 아쉬웠다. 순간 박물관의 돌칼을 떠올렸다. 30년을 보존하기도 힘든데, 수천 년을 견뎌왔구나.

손잡이가 깨진 우리집 부엌칼. 이 칼이 간직한 우리집 부엌의 역사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서랍 안에 모셔두고 있다.

같은 칼을 사러 매장에 갔다. 똑같은 칼은 없었다. 칼도 모델이 조금씩 바뀌는구나. 전시돼 있는 칼 가운데 그 칼과 가장 유사한 칼을 골라 꺼내보려고 했다. 종업원이 급히 달려와 꺼낼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아하, 내가 잠자고 있는 칼의 본능을 깨울까봐 그런 모양이다. 


가격이 예상보다 많이 비싸 그 칼 사는 것은 포기했다. 또 다른 이유는 그 칼의 유용성, 즉 날카로움 때문이었다. 집에서 쓰던 칼은 오래 쓰다 보니 날이 무뎌져서 갈아서 쓰더라도 그렇게 위험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 같은 초짜에게는 오히려 더 맞는 셈이었다. 하지만 매장에서 본 칼은 달랐다. 무언가를 베기 위해 항상 준비하고 있는 듯한 날선 모습이 나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결국 나는 다른 매장에서 좀 더 둔중해 보이는 칼을 샀다. 가격이 한참 쌌다. 그런데 집에 와서 사용해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너무 크고 무거워서 쉽게 사용하기 힘들었다. 날카롭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그 칼은 싱크대 안에서 잠을 자다가 무거운 고기 덩어리를 만나거나 힘주어 잘라야 하는 냉동 재료를 만날 때만 깨어난다. 


처음보다 칼에 조금 익숙해진 지금 다시 좋은 칼이 갖고 싶다. 잠들지 않는 자신의 본능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런 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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