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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Apr 05. 2021

창문이 있는 부엌

일본의 TV 프로그램 가운데 개성 있는 주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1천 편이 훨씬 넘게 방송됐으니, 상당히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여기에 소개되는 집들은 거의 모두가 좁은 대지 위에 2층~3층 정도로 지은 단독주택들이다. 각각의 집들은 건축주의 필요와 개성을 반영하여 독특한 외관과 내부 공간 배치, 세련된 인테리어를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서 소개되는 주택들은 모두가 부엌 공간에 창문을 마련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 아파트들은 부엌 쪽에는 대부분 창문이 없었다. 요즘은 부엌 쪽에 창문이 있는 경우가 전에 비해 훨씬 많아졌다. 내가 전에 살던 아파트도 부엌에 창문이 없었지만,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창문이 있다. 가스레인지 바로 위에 창문이 있어서, 내가 원하지 않아도 자연히 밖을 보게 된다.


수묵화가 연상되는 흰 눈이 내려앉은 앙상한 나뭇가지, 사치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봄의 꽃 잔치, 한여름 짙은 녹색에서 가을의 붉은 단풍으로 차츰 변해가는 모습까지. 부엌에 뚫린 A4 서너장 크기 창문으로 내가 누리는 호사다. 이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은 벽만 바라보던 전의 부엌과는 뭐가 달라도 다를 것이다. 


지금은 창밖에 벚꽃이 한창이다. 나의 집은 아파트니까 이런 창밖 풍경까지 염두에 두고 창문을 냈을 리는 없지만, 아무튼 지금 부엌 창밖에는 벚꽃이 흐드러진다. 

부엌 창문. 사계절이 바뀐다.
부엌 창문으로 보이는 벚꽃 무리. 창문을 열고 찍었다.


이렇게 지금 집의 창문 칭찬을 늘어놓았지만, 일본 TV 집의 창문들과는 큰 편차가 있다. 그 집의 창문들은 우리 아파트의 창문보다 훨씬 크다. 내 집의 조그만 창문도 그렇게 즐거움을 주는데, 커다란 창문으로 누리는 편안함과 즐거움은 어느 정도일지 궁금해진다. 어떻게 부엌에 그렇게 큰 창문을 빼놓지 않고 두게 되었을까. 


부엌에 창문을 두는 이유는 환기를 위한 목적이 첫 번째일 것이다. 환기를 할 수 있는 후드(hood) 시스템을 갖춰 놓았다고 해도, 외부 공기가 직접 순환되는 효과보다는 못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종종 부엌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각종 음식 냄새가 날아가고, 바깥 공기가 들어올 때 느끼는 신선함은 거실 창문을 열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그때 앞서 말한 눈 호강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된다.


전통적으로 별로 넓지 않은 집에 사는 일본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부엌에 그렇게 창문을 만들어놓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부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위한 배려의 결과일 것이다(혹은 여성의 발언권이 커지면서 쟁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부엌에 각종 첨단 주방 기구를 갖춰놓아 사용자의 편의를 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더라도 창문을 만들어놓아 숨 쉴 여유를 만드는 것은 굉장히 유용하리라고 생각한다. 생활하는 공간이 달라지면 생각하는 것도 달라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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