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그러면, 30분간 활중이야.”
며칠 전, 요즘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아내가 불가해한 단어를 또 끄집어냈다. 활중? 활중? 뭘까?
아내의 설명을 듣고 요약하면 이렇다.
인터넷의 연예인 카페 같은 곳에서 적절치 않은 표현을 거듭 사용하거나 다른 회원들을 불편하게 하는 회원들에게 내려지는 조치 가운데 하나가 활중이다. 활중은 아마도 ‘활동 중지’의 약자인 듯하다. 그렇다면 내 생각에 이건 활중이 아니라 활금, 즉 활동 금지가 맞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토를 달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바로 활중이 될 테니까 말이다.
내가 아는 상황으로 바꿔 설명을 하자면 축구에서 심판이 꺼내는 옐로카드 같은 것인가 보다. 그렇다면 “레드카드도 있나”하고 물었다. 있단다. 그건 강퇴다. 아, 이건 들어본 단어다. 아내의 설명이 이어진다. 강퇴에도 종류가 있다. 퇴출 됐다가 다시 들어올 수 있는 강퇴가 있고, 재가입이 안 되는 영구 퇴출이 있고. 나는 활중과 강퇴를 유기정학, 무기정학, 퇴학 같은 개념으로 이해했다.
활중은 내가 최근에 접한 단어이고, 그 외에도 인터넷에서 쓰는 새로운 단어들이 아주 많다. 개중에는 우악스럽고 억지스럽게 만든 단어들도 있지만 재기가 반짝이는 단어들도 있다. 이제는 ‘훈민정음’이 되어버린 덕후, 언플, 강추, 비추, 남사친, 여사친부터, 설명을 들으면 쉽게 이해가 되는 프사(=프로필 사진), 설명을 들으면 알긴 하지만 뭔가 억지스런 인친(=인스타그램 친구), 반면 단어의 생성 과정에 비약이 심한 만렙, 그리고 도대체 이해하기 힘든 뉴비까지...
그런데 문제는 그런 단어 몇 개를 아는 게 자랑인 듯 자주 사용하다가는 ‘라떼’가 된다는 사실이다. 라떼도 이제는 등장한 지 꽤 된 단어다. 내가 안 것도 꽤 됐으니, 등장한 것은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을 것이다. 라떼는 ‘라떼 이즈 홀스’의 약어로 ‘나 때는 말이야’를 줄인 말이다.
보통의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렇게 설명해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설명하면. ‘나 때’가 요즘 인기 있는 커피 종류 라떼(Latte)로, ‘말이야’가 영어 ‘이즈 홀스(is horse)’로 둔갑한 것이다. 합치면, ‘나 때는 말이야(Latte is horse.)’가 된다. 내가 젊었을 때, 혹은 내가 한창 때는 이러저러했다는 이야기를 수시로 하는 꼰대들을 비꼬는 말이다. 억지스럽다고 느껴져서 이 농담을 처음 듣고는 어이없어 하면서 한참 웃었다. 그러고 나서 “야, 그런 소리 하면 라떼 되는 거야.”처럼 나도 몇 번을 써봤다. 젊은 애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조심해 가면서. 이유는 자명하다. 라떼 될까봐.
“그러면 20분 활중이야.”
내가 아내로부터 활중을 처음 배운 날, 아내는 나에게 여러차례 활중 경고를 내렸다. 활중이 확정되면 나는 정해진 시간 동안 입을 닫아야 한다(세상에 이런 가혹한 형벌이 있나...). 이게 우리 부부 활중 놀이의 규칙인 것이다. 아내는 활중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웃음을 참지 못하는 내 모습이 재미있는지 여러 차례 활중을 남발했다. 나는 그날 아내의 ‘활중 비단’ 때문에 ‘포사(褒姒)’*가 된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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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사(褒姒) : 이 대목에서 전설의 미녀 포사(褒姒)를 떠올리는 걸 보면 나는 분명히, 꼰대 아니 라떼다. 중국 고대 주(周)나라의 마지막 유왕(幽王)은 웃지 않는 애첩 포사를 웃기려고 비단을 수없이 찢었다고 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거짓 봉화를 올려 포사를 웃기려고도 했다. 결국 봉화 때문에 나라를 말아 먹었다나. 이런 라떼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