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라떼 i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데렐로 May 03. 2021

핸드폰 인연

요즘 대세는 트로트다. 수없이 많은 TV 채널이 앞 다퉈 트로트 노래를 튼다. 그 핫한 트로트 세계의 한복판에 있는 20대 중반의 젊은 가수가 신곡을 발표했다. 그런데 노래 제목에 인연(因緣)이 들어있다. 인연을 들먹이기에는 나이가 너무 젊지 않은가...




나는 어제 핸드폰을 바꿨다. 핸드폰으로 몇 번째인지는 모르겠고, 스마트폰으로는 세 번째 폰을 쓰게 된 것이다. 이번에 스마트폰을 바꾸게 된 계기는 2G 시대가 끝났기 때문이다. ‘2G건, LTE건, 5G건 나랑은 관계없는 일이다’하며 살았는데 웬 2G? 내가 갖고만 있는 오래된 핸드폰이 2G였기 때문이다.


이 핸드폰은 15년쯤 전 내가 아버지께 사드렸던 것이다. 그때 아버지 연세는 70 후반이었으니까 굳이 핸드폰을 필요로 하시지 않았을 텐데 주변에 핸드폰을 쓰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궁금해지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무렵 부모님께 핸드폰이 필요한 아주 실제적인 이유가 생겼다.


부모님 두 분만 사시다 보니 예상치 못한 일이 가끔 생기곤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전화였다.  집 전화기를 잘못 놓으면 하루 종일 전화 통화가 안 되는 것이다. ‘혹시 부모님 댁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114에 전화해서 전화기 잘못 놓인 게 맞느냐고 물은 적도 있다.


직장 때문에 내가 가볼 수는 없어 아내를 직접 보낸 일까지 생겼다. 전화기가 잘못 놓이면 경고음이 나는데도 두 분은 그걸 알아채지 못하셨다. 그런 일이 몇 차례 생기고보니, 정작 두 분은 무심한데 나랑 형제들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 그 끝에 생각해 낸 것이 핸드폰이었다.


한동안은 잘 쓰셨다. 외출하실 때면 갖고 나가셨고, 전화를 드리면 잘 받으셨다. 시간이 지나고, 아버지께 문자의 세계를 알려드리려 할 때 쯤 핸드폰에 대한 아버지의 관심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핸드폰의 존재를 잊고 계신 것도 같고, 벨소리를 잘 듣지 못하시는 것도 같았다. 보청기 끼는 것을 아주 귀찮아하셨으니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후 아버지께서는 한동안 건성으로 핸드폰을 들고 다니시다가 나중에는 아예 챙기지도 않으실 정도가 되었다. 나는 쓰지도 않을 핸드폰을 왜 갖고 계시느냐고 성화를 하고. 그러다 결국은 내가 포기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핸드폰 문자의 세계 문턱에서 돌아나가셨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나는 핸드폰을 어떻게 할까 망설였다. 그 핸드폰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그냥 정리하기에는 마음이 쓰였다. 핸드폰은 보관을 했고, 번호도 살려두었다. 사용중지를 해 놓으면, 비용을 따로 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잊었다.


3년 전 내가 이사를 준비하면서,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6년이 지났을 때 핸드폰이 ‘발굴’되었다. 오만가지 짐을 정리할 때 잊고 있던 핸드폰이 다시 나온 것이다. 잠깐 망설이다 부모님 유품 속에 다시 넣었다. 그리고 다시 잊었다.


3년쯤 시간이 흐른 최근에 그 핸드폰이 다시 내 생활에 들어왔다. 나는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게 2G였고, 이제 2G폰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며 통신사에서 나에게 결정을 요구해왔다. 나는 그 통신사로부터 두 차례나 공지문을 우편으로 받은 끝에 상담원과 통화를 했고,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쉽게 마음을 정한 이유 가운데에는, 2G폰을 정리해주면 무언가 혜택을 준다는 것과 내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이 무려 4년이나 되었다는 이유도 포함되었다.

사진 출처 : pixabay

대리점을 찾았다. 판매 직원에게 내 사정을 열심히 설명했다. 통신사의 우편물도 보여주었다. 그 직원도 나름 한참 설명을 했다. “2G폰이 있기 때문에 혜택을 받으실 수 있는 건데요...” 설명을 듣고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질문을 두어번 하다가 그만 두었다. 내가 안들 뭐 할 거며, 몰라도 관계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때 매장에 들어온 할머니가 옆의 직원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워낙 가까워서 조금만 신경써도 이야기가 들렸다. 엊저녁까지 단톡방에 있던 친구가 없어져버렸단다. 무관심한 직원은 ‘나갔나 보죠’하며 딴전을 피웠다. 할머니는 걔가 나갈 리가 없다, 엊저녁까지 있었다며 어떡하느냐고 채근했다. 직원은 짜증 묻은 목소리로, 할머니가 뭘 잘못 누르셨나보죠 하며, 무성의한 대답을 반복했다. 참다못한 나는 할머니에게 “다시 부르시면 돼요”하고 설명했다. 못 알아듣는 표정이었다. 잠시 후 할머니는 직원에게 “다시 부르려면 어떡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순간 뫼비우스의 띠를 떠올렸다.


나의 뫼비우스 띠 위로 돌아와서, 내 담당 직원에게 말했다.

“바꿔주세요.”

메모리는 많이 필요 없다, 기종은 작고 가벼울수록 좋다. 첨단은 필요 없다.


나의 요구에 딱 들어맞는 기종은 물론 없었다. 소비사회에서 주역이 아닌 변방 소비자에게 들어맞는 제품이 있을 리가 있나.


이렇게 나와 내 핸드폰이면서 아버지의 핸드폰이었던 2G폰과의 인연은 끝이 났다.


직원은 내 핸드폰의 정보를 새 폰으로 옮기는 데 한시간 쯤 걸린다고 했다. 나는 알았다며 한시간 후에 오겠다고 했다.


대리점문을 나서는데 기분이 묘했다. 이제 더 이상 그 핸드폰은 나에게 없다. 있었다 해도 나랑 아무 관계없는 것이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아버지와의 인연을 그 핸드폰이 매개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

영원한 것은 없으니,

이별에도 웃어주세요”

이찬원의 <시절인연>

신인 가수의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젊은 가수는 가사 내용을 알고 부르는 걸까, 모르고 부르는 걸까.


옆의 할머니도 생각났다.

엊저녁까지 ‘같이’ 있던 친구가 할머니 생각과는 달리 인연을 정리하려던 건 아니었을까.


“~~~~

좋았던 날 생각을 하고

고마운 맘 간직을 하며

아아아 살아가야지

바람처럼 물처럼”

<이찬원 노래 ‘시절인연’>


가사 뜻도 모르고, 그 노래도 몰라도 그렇게 살면 되겠다.

좋았던 날 생각을 하고, 고마운 마음 간직을 하며...

-----------------------

*이 글은 지난 해 여름 핸드폰을 바꾸면서 썼던 초고를 일부 수정해서 올린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롤러코스터 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