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라떼 i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데렐로 May 06. 2021

수영의 추억

내가 수영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것은 마흔일곱 살 때였다. 잦은 음주로 배는 산만했고, 밥 먹듯 하는 야근에 건강상태는 완전히 바닥이었다. 운동이라고는 군대 제대 후 20년 가까이 전혀 해 본 적이 없는 상태. 운동하기로 마음먹으면서 그 당시 인기를 끌던 황수관 박사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우유가 건강에 좋다고 해서 매일 우유를 시켜 먹었는데, 정작 오래 산 사람은 우유를 먹은 사람이 아니라 우유를 배달한 사람이었대요. 으하하하하.” 말 그대로 운동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촌철살인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운동이 수영이었다.


보통 수영은 네 가지 형식을 배우게 된다. 자유형(크로올이라는 표현이 적확하겠다), 배영, 평영, 접영. 내가 수영을 시작한 지 2~3개월 되었을 때는 자유형과 배영만 할 줄 아는 상태였다. 수영에 아주 재미를 붙여서 여행을 가서도 수영장을 찾아다녔다. 춘천에 갔을 때였다. 한 수영장을 찾아갔는데 그 수영장은 내가 다니던 수영장의 25미터 풀과는 달리 국제 규격인 50미터 규모였다. 


문제는 깊이였다. 출발지점은 낮지만 도착지점은 점점 깊어졌다. 가장 깊은 곳은 2미터쯤 되었던 것 같다. 바닥에 발이 닿으면 완전히 물속에 잠기는 깊이였다. 25미터 왕복, 즉 50미터를 쉬지 않고 건너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만에 하나 끝까지 건너지 못하면 망신살도 망신살이지만 몹시 위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안전요원도 없는 상태였다. 


자유형에 자신이 없던 나는 일단 배영으로 건너가 보기로 했다. 뜨기만 하면 빠질 위험은 없고, 50미터를 헤엄쳐 본 적은 없지만 충분히 할 것 같았다. 실제로 해 보니 가능했다. 그러고 나서 자유형으로 헤엄을 쳤다. 막판에 숨이 턱에 닿았지만 간신히 건너갈 수 있었다. 두어 번 자유형을 하고는 배영으로 한번, 다시 자유형과 배영을 섞어서 몇 번을 건너갔다. 배영은 이렇게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2~3개월 상황에서 내가 속한 초급반에 나보다 확실히 나이가 많은 남성이 한 명 있었다. 수영모자와 고글을 쓴 모습만 주로 보기 때문에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지만 당시 내 나이보다 10여 세는 위인 듯했다. 그 아저씨(할아버지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라...)는 같은 초급반이지만 완전 초보인 나보다 두세 달 쯤 경력이 많은 듯했다. 


그런데 그 아저씨의 배영 모습이 몹시 특이했다. 두 팔이 귀 옆을 스치며 풍차 돌아가듯 하는 게 아니라, 팔이 쫙 뻗지 못하고 물에 빠져서 살려달라는 사람처럼 허우적대는 느낌인 것이다. 사투리로 표현하자면, 사지(四肢)가 완전히 뻐덩뻐덩하고 부드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양새였다. 그 아저씨 모습을 보고는 반면교사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팔을 귀에 바짝 붙여야 저런 폼이 안 될 거라면서 나름 열심히 팔을 뒤로 저었다.


한두 달이 더 지났을 무렵, 자신감이 과잉하던 나는 아내에게 자랑을 할 심산으로 같이 수영을 하러 가자고했다. 그리고는 핸드폰으로 내 모습을 찍어달라고 했다. 고쳐야할 점은 없는지 보겠다며. 아내는 귀찮아하며 마지못해 동영상을 찍어줬다. 


자세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이것은 신데렐로가 수영하는 모습이 아니다. (*사진 출처 : pixabay)

그 동영상에서 자유형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는 어이가 없었다. 리드미컬하게 팔을 구부렸다 펴면서 손바닥으로 물을 움켜쥐듯 뒤로 당기는 모습을 생각했는데, 핸드폰 안에는 팔을 편 것도 아니고, 구부린 것도 아닌 뻣뻣함 그 자체로 팔을 휘젓는 이상한 남자의 모습이 들어있는 것이다. 아내는 그 화면을 보고는 이렇게 하는데도 코치가 고쳐주지 않느냐는 몹시 정확한 지적, 하지만 몇 개월 동안 수영에 빠져 살아온 나의 노력을 완전히 뭉개버리는 모욕감을 안겨주는 발언을 내뱉었다. 


나는 못 들은 척 하며, 배영 화면으로 넘어가 보았다. 이건 괜찮겠지 하는 기대와 함께. 그러나 기대는 바로 다음 순간 대경실색으로 바뀌었다. 그 화면 안에는 나의 ‘반면교사 아저씨’가 들어있는 게 아닌가. 팔은 안짱다리처럼 구부정했고, 귀에 바짝 붙어 뒤로 넘어가며 물살을 가르는 게 아니라, 독학으로 수영을 배워서 가장 안 좋은 상태에 도달한 듯한 중년 남성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나는 도저히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자유형은 아주 열심히 하면 조금 나아질지 모르겠다는 여지라도 있었지만, 배영은 물에 빠져 죽을 절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남들이 볼 때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그 후에도 나는 한동안 수영을 계속했다. 하지만 다시 촬영을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너무 늦게 수영을 시작해서 소위 각이 잘 안 나오는 걸 거야’라고 위로 겸 격려를 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노화 때문에 몸이 부드럽지 않아서 그런 거 아냐’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지금은 처음 수영을 배우던 때로부터 시간이 한참 더 지났다. 최근에는 이상한 폼 때문이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수영장에는 가지 않는다. 가끔 시원한 물이 그립다. 오늘 아침 우유를 마시면서 또다시 황수관 박사(*)를 떠올렸다. 그의 독특한 웃음과 함께. 으하하하하.

---------------

*황수관 박사는 자신의 ‘건강 전도사’ 역할을 다 마쳐서인지 조금 일찍 세상을 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핸드폰 인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