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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May 17. 2021

아는 것이 꼭 힘은 아니다

핸드폰 기능 꾸역꾸역 따라가기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 되는 세상. 스마트폰을 쓰면서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편리하다고 다 좋은 게 아니라서 문제지만.


1990년대 초반. 내 직장상사는 요즘 말로 치면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였다. 그의 차에는 카폰이 있었다. 당시로서는 첨단이었다. 어느 초겨울 주말 저녁, "대관령을 넘어가고 있다"면서 전화를 해왔다. 업무와는 무관했다. 카폰 자랑이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1990년대 중반, 연예인 리포터와 함께 야외 촬영을 다닐 때였다. 그 연예인은 그때 벌써 핸드폰을 갖고 다녔다. 나도 아주 급할 때는 그 핸드폰을 빌려 쓰기도 했다. 단점이 있었다. 산굽이를 돌면 전화가 끊어지고는 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그 핸드폰의 크기였다. 지금은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는 미국 브랜드 M이었는데, 과장 없이 붉은 벽돌보다 조금 작았다. 그 연예인은 ‘벽돌’을 넣는 전용 가방을 들고 다녔다.


1990년대 중후반, 나도 핸드폰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핸드폰 대중화 단계 초입이었다. 참 편리했다. 하지만 단점이 있었다. 출근할 때 간혹 핸드폰을 놓아두고 출근하는 일이 생겼다. 지금이야 핸드폰 없이 외출하는 걸 생각하기 어렵지만 그 무렵에는 그런 일이 있었다. 핸드폰 없이 출근하면 한동안은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불안은 몇 시간 후 사라졌다.


이 무렵 어린 시절의 어린이 잡지를 떠올렸다. 그 잡지에는 종종 놀라운 21세기 세상이라는 주제가 등장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바로 이 세상’을 그리는 ‘미래 공상 과학’ 이야기였다. 거기에 들고 다니는 전화기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몇 년 후 누구나 핸드폰을 갖고 다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한 후배가 핸드폰이 고장났다고 하더니 얼마 후에도 새 폰을 샀다는 자랑질이 없기에 물었다. 핸드폰 샀어? 안 살려구요. 불편하잖아? 아니요. 저한테 연락하려는 사람이 불편하겠죠. 정 필요하면 옆 사람 꺼 빌려 쓰면 돼요. 이게 무슨 핸드폰으로 못 박는 소리인가.


그 무렵 문자 세상으로 접어들었다. 원래 문자라는 게 있었는데 내가 모르다가 뒤늦게 썼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핸드폰이 전화를 거는 기계만은 아닌 놀라운 도구임을 실감했다. 하지만 상대방이 문자를 보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사진 출처-신데렐로 핸드폰

핸드폰 문자의 놀라움과 편리함도 오래가지 않았다. 문자 세계에 지각 변동이 생겼다. 공짜 세상이 다가왔다. ‘톡’이 나타난 것이다. 톡과 문자의 가장 큰 차이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문자에도 거의 돈이 들지 않지만, 당시는 제한된 건수의 문자만 무료였다. 톡의 세상은 달랐다. 공짜의 달콤함...


그러더니 톡 세계에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 상대방이 내 메시지를 읽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기능이 출현했다. 진일보였다. 내가 상대방을 컨트롤 하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 변화에 가속이 붙었다. 상대방이 보낸 문자를 내가 표내지 않고, 즉 상대방이 모르게 읽는 방법까지 등장했다(이 기능이 나온 지 꽤 되었지만 이 기능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좋은 점에 나쁜 점이 섞이는 것은 신의 장난 때문인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 때문인가. A에게 보낼 문자를 덜컥 B에게 보내는 불상사가 생기기 시작했다. 문자 세상에서는 좀체로 없던 일이다(왜 그럴까). A에게 보내야 하는 B의 욕을 당사자인 B에게 보내다니. 알파벳도 모르는 인간 같으니. 이걸 도대체 어떻게 수습하라는 말이냐.


그러더니 상대방이 읽기 전에 자기가 보낸 메시지를 삭제하는 기능도 생겨났다. 여기까지 열심히 따라온 나는 더 이상 깜짝 놀랄 기능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내가 그 세계에서 완전히 소외돼 뭐가 뭔지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얼마 전 톡으로 하는 다자간(多者間) 통화 방법을 알게 되면서 느낀 감정이다.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 되는 세상. 이 정도 되면, 언젠가는 시공의 초월도 가능하다고 ‘우길’ 것 같다. 그때 느끼는 편리함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편리함이 불러올 공포스런 부작용을 생각하면 그런 세상은 오지 않는 게 더 좋을 것도 같다. 여기에 코로나 백신 걱정까지 하고 있다. 걱정도 팔자다.


*내가 사용하는 핸드폰 기능이 전체 기능의 10% 정도나 될까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쓴 글이니 헤아려 읽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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