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읽었던 신문 칼럼 제목이다. 제목의 메시지가 단순, 명료해서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반면 칼럼 내용은 전혀 기억에 없다. ‘멋대로 나대다가 험한 일 당하지 말고, 성실하게 잘 살라.’는 정도의 내용이었을 듯하다.
이 문장은 내 기억에 자리잡은 후 수시로 재생되었다. 그 중에서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본 후의 기억은 아주 강렬했다. 아, 서툰 짓하다가는 저렇게 되는구나... 그리고 쏘는 자의 입장이 아닌 타겟의 입장에서 ‘오늘도 총 맞을 뻔 했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다. 직장생활, 사회생활의 현장은 서부와 다름없었다.
오늘 나는 다시 이 문장을 소환했다.
타겟은 나의 아내였고, 총을 맞은 장소는 스타벅스(***) 매장 안이었다.
오늘은 내가 피아노 연습을 하는 날이다. 이런 날 대부분 아내는 나와 동행해서 문화센터 부근 스타벅스 매장에서 기다린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다. 스타벅스 여름 이벤트에서 제공하는 ‘굿즈’를 받기로 한 것이다. 그걸 가지고 뭘 저럴까 하는 나와 달리 아내는 며칠 전부터 오늘을 기다렸다.
스벅 여름 이벤트(정식 명칭은 서머 e-프리퀀시 이벤트 쯤 되는 모양이다)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년에는 틀림없이 있었다. 이벤트에서 제공하는 ‘굿즈’는 여행용 보조 가방과 야외용 접는 의자였다. 이걸 받겠다고 수백 잔의 커피를 주문한 후 커피는 안 가져가고 굿즈만 가져갔다는 어이 없는 일화도 있었던 그 이벤트다. 나의 아내도 이 이벤트에 동참했다. 관심을 안 갖기 어려운 상황이었다(설명을 곁들이자면, 아내는 이런 일에 보통 정도의 관심을 갖는 ‘일반인’이다). 이른바 주류 언론까지 이 이벤트를 뉴스로 여러 차례 다뤘을 정도니까.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무관심한 사람이 훨씬 더 많았으리라.
나는 아내의 압박에 굴복하여 이벤트에 동참하였다. 동참의 내용은 특정 음료를 마시는 것이다. 이벤트를 완성하려면 여러 잔의 음료를 마셔야 한다. 그 가운데 특별히 정해놓은 미션 음료가 있다. 이 미션 음료는 모두 칼로리가 높은 음료들이다. 내 역할은 그 고칼로리 음료를 먹어대는 것이다. 여러 번의 ‘완성’을 위해 나는 작년 여름 수천칼로리의 미션 음료를 마셨다. 아내는 그 덕에 가방과 의자를 득템했다.
코로나 때문에 해외에 나갈 일은 없었고, 굿즈 가방은 우리집 거실 한 구석에서 가을잠, 겨울잠, 봄잠을 잤다. 그리고 얼마 전 잠에서 깨어 경주여행에 처음 동행했다. 반면 야외 의자는 바닷가 여행에 여러차례 동행했다. 이 글 대문사진에 등장하는 의자가 바로 그것이다.
스벅은 지난 해 이벤트의 안 좋은 상황들을 올해 개선했다(*스타벅스 칭찬이나 홍보성 글이 아님을 여기서 분명히 밝힌다. 하지만, 스벅에 거부감이 있는 분들은 여기서 뒤로 가기를 누르시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수백잔을 주문할 수 없도록 했다. 굿즈를 받으려고 새벽부터 난리를 치지 않도록 예약을 하도록 했다. 나는 스벅이 지금까지 나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 적어도 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 않는 것. 아주 단순하지만 많은 사람, 많은 회사가 수도 없이 반복하는 그 어리석음을 안 하는 것이다.
피아노 연습 도중 아내에게 톡을 했다. 남편의 의무를 다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다. 사진과 함께 답톡이 왔다. 이해가 잘 안 되는 사진이 거기 있었다. 조그만 가방을 주는 줄 알았더니 캐리어를 주나? 아침에 내가 가방 크기를 물었을 때 아내는 잘 모른다고 했다. 작년 것과 비슷하지 않겠냐고도 했다. 하지만 그 예측은 완전히 틀렸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
잠시 후 내가 스벅에 들어섰다. 아내는 창가쪽 구석에 앉아 있었다. 맞은 편에 문제의 가방이 있었다. 보는 순간 웃음이 터졌다. 전화 통화에서 아내가 “내가 들고 갈 수 없다.”고 말한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차를 가져오는 게 어떻겠느냐고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답이 없다. 가방을 들어보았다. 무게가 그리 무겁지는 않다. 들고가기로 했다.
보라, 이 가방을!!
걸어가면서 물었더니, 이 가방을 담은 쇼핑백을 샀단다. 무려 2500원을 주고. 이런 대목에서 나는 대부분 분개하는데 오늘은 웃었다. 이제까지 잘 참았는데, 여기서 망칠 수는 없으니까. 아내는 쇼핑백 없이는 도저히 들 수 없었다고 했다. 십분 이해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만약, 짐꾼인 내가 없었다면 오늘 상황은 어떻게 마무리 되었을까. 나는 내 뇌 속에 갈무리한 문장을 다시 꺼냈다.
“서툰 짓하면 쏜다.”
한숨돌린 아내가 오늘의 ‘위험했던’ 상황을 조카에게 전달했다. 조카가 신속하게 반응했다. “나는 가방 말고, 랜턴으로 바꿔야 할까봐.”
(***스타벅스 상호를 어떻게 처리할지 잠깐 고민했다. 별다방으로 할지, 땡땡벅스로 할지. 브런치 내에서 검색을 해보니 많은 글에서 스타벅스로 등장한다. 나도 편하게 그냥 쓰기로 했다. 약어 스벅으로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