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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May 20. 2021

서툰 짓하면 쏜다

스타벅스 이벤트 관련 주의사항

“서툰 짓하면 쏜다.”

오래 전에 읽었던 신문 칼럼 제목이다. 제목의 메시지가 단순, 명료해서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반면 칼럼 내용은 전혀 기억에 없다. ‘멋대로 나대다가 험한 일 당하지 말고, 성실하게 잘 살라.’는 정도의 내용이었을 듯하다.


이 문장은 내 기억에 자리잡은 후 수시로 재생되었다. 그 중에서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본 후의 기억은 아주 강렬했다. 아, 서툰 짓하다가는 저렇게 되는구나... 그리고 쏘는 자의 입장이 아닌 타겟의 입장에서 ‘오늘도 총 맞을 뻔 했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다. 직장생활, 사회생활의 현장은 서부와 다름없었다.


오늘 나는 다시 이 문장을 소환했다.


타겟은 나의 아내였고, 총을 맞은 장소는 스타벅스(***) 매장 안이었다.


오늘은 내가 피아노 연습을 하는 날이다. 이런 날 대부분 아내는 나와 동행해서 문화센터 부근 스타벅스 매장에서 기다린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다. 스타벅스 여름 이벤트에서 제공하는 ‘굿즈’를 받기로 한 것이다. 그걸 가지고 뭘 저럴까 하는 나와 달리 아내는 며칠 전부터 오늘을 기다렸다.


스벅 여름 이벤트(정식 명칭은 서머 e-프리퀀시 이벤트 쯤 되는 모양이다)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년에는 틀림없이 있었다. 이벤트에서 제공하는 ‘굿즈’는 여행용 보조 가방과 야외용 접는 의자였다. 이걸 받겠다고 수백 잔의 커피를 주문한 후 커피는 안 가져가고 굿즈만 가져갔다는 어이 없는 일화도 있었던 그 이벤트다. 나의 아내도 이 이벤트에 동참했다. 관심을 안 갖기 어려운 상황이었다(설명을 곁들이자면, 아내는 이런 일에 보통 정도의 관심을 갖는 ‘일반인’이다). 이른바 주류 언론까지 이 이벤트를 뉴스로 여러 차례 다뤘을 정도니까.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무관심한 사람이 훨씬 더 많았으리라.


나는 아내의 압박에 굴복하여 이벤트에 동참하였다. 동참의 내용은 특정 음료를 마시는 것이다. 이벤트를 완성하려면 여러 잔의 음료를 마셔야 한다. 그 가운데 특별히 정해놓은 미션 음료가 있다. 이 미션 음료는 모두 칼로리가 높은 음료들이다. 내 역할은 그 고칼로리 음료를 먹어대는 것이다. 여러 번의 ‘완성’을 위해 나는 작년 여름 수천칼로리의 미션 음료를 마셨다. 아내는 그 덕에 가방과 의자를 득템했다.


코로나 때문에 해외에 나갈 일은 없었고, 굿즈 가방은 우리집 거실 한 구석에서 가을잠, 겨울잠, 봄잠을 잤다. 그리고 얼마 전 잠에서 깨어 경주여행에 처음 동행했다. 반면 야외 의자는 바닷가 여행에 여러차례 동행했다. 이 글 대문사진에 등장하는 의자가 바로 그것이다.



스벅은 지난 해 이벤트의 안 좋은 상황들을 올해 개선했다(*스타벅스 칭찬이나 홍보성 글이 아님을 여기서 분명히 밝힌다. 하지만, 스벅에 거부감이 있는 분들은 여기서 뒤로 가기를 누르시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수백잔을 주문할 수 없도록 했다. 굿즈를 받으려고 새벽부터 난리를 치지 않도록 예약을 하도록 했다. 나는 스벅이 지금까지 나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 적어도 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 않는 것. 아주 단순하지만 많은 사람, 많은 회사가 수도 없이 반복하는 그 어리석음을 안 하는 것이다.


피아노 연습 도중 아내에게 톡을 했다. 남편의 의무를 다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다. 사진과 함께 답톡이 왔다. 이해가 잘 안 되는 사진이 거기 있었다. 조그만 가방을 주는 줄 알았더니 캐리어를 주나? 아침에 내가 가방 크기를 물었을 때 아내는 잘 모른다고 했다. 작년 것과 비슷하지 않겠냐고도 했다. 하지만 그 예측은 완전히 틀렸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


잠시 후 내가 스벅에 들어섰다. 아내는 창가쪽 구석에 앉아 있었다. 맞은 편에 문제의 가방이 있었다. 보는 순간 웃음이 터졌다. 전화 통화에서 아내가 “내가 들고 갈 수 없다.”고 말한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차를 가져오는 게 어떻겠느냐고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답이 없다. 가방을 들어보았다. 무게가 그리 무겁지는 않다. 들고가기로 했다.


보라, 이 가방을!!


걸어가면서 물었더니, 이 가방을 담은 쇼핑백을 샀단다. 무려 2500원을 주고. 이런 대목에서 나는 대부분 분개하는데 오늘은 웃었다. 이제까지 잘 참았는데, 여기서 망칠 수는 없으니까. 아내는 쇼핑백 없이는 도저히 들 수 없었다고 했다. 십분 이해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만약, 짐꾼인 내가 없었다면 오늘 상황은 어떻게 마무리 되었을까. 나는 내 뇌 속에 갈무리한 문장을 다시 꺼냈다.


“서툰 짓하면 쏜다.”


한숨돌린 아내가 오늘의 ‘위험했던’ 상황을 조카에게 전달했다. 조카가 신속하게 반응했다. “나는 가방 말고, 랜턴으로 바꿔야 할까봐.”


(***스타벅스 상호를 어떻게 처리할지 잠깐 고민했다. 별다방으로 할지, 땡땡벅스로 할지. 브런치 내에서 검색을 해보니 많은 글에서 스타벅스로 등장한다. 나도 편하게 그냥 쓰기로 했다. 약어 스벅으로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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