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기우(杞憂) (1)
2주 전, 오랜만에 골프장에 라운딩을 하러 갔다가 불미스런 일이 생겼다. 캐디의 실수로 클럽이 파손된 것이다. 이 문제를 정리하느라 골프장 측과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했다. 그 과정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통화 내용을 녹음하려고 했다.
요즘에는 좀체 쓸 일이 없는 기능이었다. 아이폰 계열은 녹음 기능이 아예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내 스마트폰은 삼성 제품이지만, 혹시 녹음 기능이 없어지지 않았나 하고 확인해 보았다. 그 기능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통화 내용이 녹음된 후 이것저것 눌러보는 과정에서 못 보던 내용을 발견했다.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이라는 기능이 있다. 눌러 보았다.
'이게 뭐지?'
녹음된 내용이 소리로 반복됨과 동시에 그 내용이 글자로 화면에 나타나는 것이다. 어? 이런 기능도 다 있나? 해외 여행할 때 TV 뉴스가 동시에 자막으로 나타나는 걸 본 적 있다. 그때 궁금했다. 뉴스를 먼저 받아서 자막 처리할 리는 없는데 동시 통역도 아니고, 동시 자막처리를 한다고? 궁금증의 답을 찾지는 못 했고, 여행이 끝나면 잊어버리고는 했다. 그런데 그 음성의 동시 자막 처리 기능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녹음된 내용을 풀어써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여간 귀찮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게 아니다. 한 번에 받아 적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재판 등에 사용하기 위해 녹음을 푸는 녹취 행위에는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그 일이 무료로 순식간에 이뤄지는 것이다.
한 가지 더 놀란 일이 있다(만약 이 매거진 ‘라떼 is’를 자주 읽는 독자는 이 사람은 매일 놀랐다는 소리만 한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로 놀라고는 했다.)
두어 달 전이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의 촬영 일자를 확인하기 위해 상세정보를 눌러보았다. 날짜를 확인했다. 그런데 거기에 열거된 정보 가운데 뭔지 알 수 없는 기능이 있다. 예를 들면, ‘음식’ ‘풍경’ 등과 같은 단어가 있는 것이다. 두루 사진을 찾아보니, 이 단어들은 내가 찍었던 사진을 범주화하는 기능이었다. 내가 명령을 내린 바 없는데 스마트폰이 알아서 그런 '짓'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스운 일이 벌어졌다. 짜장면을 찍은 사진이 초콜릿으로 분류돼 있었다. 또 다른 짙은 밤색도 초콜릿으로 분류한다. “얘(스마트폰)는 초콜릿 좋아하나봐” 하고 웃었다.
하지만 웃을 일이 아니었다. 놀랄 일이었다. 심지어 하루에 찍은 사진 전체를 한데 묶어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놓은 기능까지 있었다. 기가 막혔다. 내가 하는 행위가 하나하나 기록되는 것을 넘어 이제는 분류까지 자동으로 되고 있었던 것이다. 놀랍고 두려웠다. 그런데 놀라움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얼마 후 다시 그 기능을 찾아보았는데, 어라, 못 찾겠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못 찾겠다, 초콜릿~” 다시 보니 상세 정보에서 제시하는 내용이 바뀌어 있다. 다른 카테고리로 넘어갔나 하고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서 귀신이 곡하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이 곡하는 세상이 되었나.
이유를 더듬었다. 며칠 전 스마트폰을 업데이트한 것이 생각났다. 보통은 업데이트 하겠느냐고 물으면 안 한다고 넘어가는데, 하도 여러 차례 반복 질문을 하길래 업데이트를 했었다. 아, 그건가 보다. 사진 분류 기능이 완벽하지 않아서 슬그머니 보완하려고 일단 없앤 모양이다(전적으로 내 생각이다). 한번 더 업데이트 하고, 그때 사진 분류 기능이 다시 업데이트와 업그레이드 되면 초콜릿은 초콜릿이 되고, 짜장면은 짜장면이 되나?
나는 내가 매일 가장 가까이 몸에 지니고 있는 스마트폰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고 있다. 스마트폰 개발자와 판매자가 모쪼록 좋은 사람들이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것인가? 샤머니즘의 주인공이었던 무당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던 때보다 지금이 더 편한 것은 맞는 듯하다. 그런데 과연 더 안전하고, 더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다.
스마트폰이 나에게 말하는 것 같다.
‘나는 네가 지난 6월 14일 월요일에 한 일을 알고 있다.’
그래. 나 그날 거제도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을 ‘쉽니다’라는 글과 함께 브런치에다 올렸다,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