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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Jul 01. 2021

매의 눈(Hawk Eye)

다시 매〔鷹〕의 계절이다. 매라는 동물이 철따라 나타나는 동물이 아닐진대 무슨 소리인가. 테니스 이야기다. 현재 프로 테니스는 매의 눈, 영어로 ‘호크 아이’(Hawk Eye)라는 독특한 판정 시스템을 이용한다. 


요즘 스포츠 경기에서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판정을 내리는 일이 잦다. 우리나라는 축구와 배구의 VAR(Video Assistant Referees)에 이어, 프로야구에도 컴퓨터 판정을 도입했다. 


이 컴퓨터 판정의 원조격인 운동이 테니스다. 컴퓨터 판정 요청을 가리키는 챌린지라는 표현도 테니스에서 먼저 쓰기 시작했다. 테니스에서 카메라와 컴퓨터의 힘을 빌려 미세한 판정을 내리는 시스템을 ‘Hawk Eye’라고 부른다. 매의 눈. 이름도 그럴싸하다. 시속 200km도 넘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가는 주먹보다 작은 공의 궤적을 그림자 영상으로 보여주는 화면은 경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세계 프로 테니스 대회 중에는 네 개의 중요한 대회가 있다. 메이저 대회로 통칭하는데, 호주 오픈, 프랑스 오픈, 윔블던, 그리고 US 오픈이다. 


지금 윔블던 대회가 영국에서 한창 진행중이다. 윔블던은 100 몇 십 년이나 되는 가장 오랜 대회라는 명성과 함께 완고함으로도 이름이 높다. 대표적인 예가 흰색 복장을 요구하는 것이다. 신발뿐만 아니라, 심지어 참여하는 선수들의 속옷도 흰색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 윔블던도 호크 아이 판정을 도입하고 있다. 이 모순된 느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한편 프랑스 오픈은 아직 호크 아이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오픈은 테니스 코트가 진흙으로 돼 있는데, 공이 떨어진 위치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4개의 메이저 대회 가운데 프랑스 오픈을 제외한 3개 대회에서는 호크 아이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다시 매의 눈으로 돌아가서...


호크 아이의 정교함과 정밀함에 기가 죽은 걸까, 호크 아이 결과에 불만을 제기하는 선수는 보기 힘들다. 99.9%, 즉 100%가 안 되는 정확성이라니까, 항의할 여지가 없지는 않은데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생기고 있다. 예를 들어보겠다.


A선수가 공격한다. 총알처럼 빠른 공이 상대방 B 선수 코트의 끝선 부근에 튀기면서 날아가 버린다. 라인 심판 역을 하는 ‘사람 심판’이 아웃이라고 콜을 한다. A 선수는 심판에게 챌린지 신청을 한다. 사람 심판의 판정에 불복해서 호크 아이로 확인해 보겠다는 것이다.



매의 눈으로 촬영하고, 컴퓨터가 편집한 화면이 경기장의 거대한 모니터와 TV 화면에 선명하게 등장한다. 5mm도 안 되는 극 미세한 부분이 흰 라인에 닿았다. ‘묻었다’는 표현이 더 실감나겠다. 주심은 조금 전 사람 심판의 판정을 번복하면서 “인(In)” 이라고 판정한다. 당연히 A 선수는 좋아하고, B 선수는 수긍한다. A를 응원하는 관중들은 환호하고, B를 응원하는 관중들은 탄식한다. 그 소리 가운데 호크 아이를 불신해서 야유를 하거나, 불만을 표출하는 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이쯤 되면 첨단 기술의 완벽한 성공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긴다. A 선수가 호크 아이의 판단에 앞서 아웃이라고 콜을 했던 사람 심판에 대해 불만스런 표정을 짓는 것이다. 


심지어 챌린지 신청을 할 때부터 노골적으로 불만스런 표정을 짓는 경우도 있다. ‘심판 당신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혹시 모르니 호크 아이로 확인해 보자’가 아니다. ‘당신의 부정확한 눈과 느린 판단은 믿을 수 없으니, 정확하고 영민한 호크 아이에게 물어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 심판은 컴퓨터 심판 앞에서 아주 무력하다.(*)


매 앞의 꿩 신세처럼 된 호크 아이 앞의 사람 심판. 


하지만 절망할 필요 없다. 


보라매를 훈련시켜 사냥 매로 길러내는 것은 사람이다. 




*호주 오픈 테니스는 올해 열린 대회부터 라인 심판(주심이 아닌 부심)을 아예 없앤 모양이다. 호크 아이가 그렇게 정확하니 그럴 법도 하지만 문제가 있다. 부심에서 훈련된 심판이 주심(체어 엄파이어. 코트 중앙의 의자 위에 앉아있는 심판)이 되는데, 그 과정이 없어진 것이다. 언젠가는 주심도 ‘매’가 담당할지 모른다. 그런데 당장 주심 자리에 컴퓨터를 갖다 앉히지 못 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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