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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Jul 08. 2021

핸드폰이 사라졌다

몸에 지니는 물건들도 대부분 자기 자리가 있다. 내 경우, 자동차 키는 바지 오른쪽 주머니, 비상 심장약은 왼쪽 주머니, 지갑은 바지 오른쪽 뒷주머니 등이다. 


핸드폰은 고정된 자리가 없었다. 겨울에는 재킷 왼쪽 안주머니인데, 여름에는 대충 바지 주머니 어느 한 군데였다. 하지만 핸드폰은 부피가 커서 늘 불편했다. 특히 1년 전에 핸드폰을 바꾸면서 인조가죽 케이스를 덮씌운 후에는 주머니에 넣기가 더 불편했다. 


그런데 자주 쓰는 신용카드를 핸드폰 케이스에 넣었더니 변화가 생겼다. 지갑을 꺼낼 일이 없어졌다. 핸드폰은 카페나 식당에서도 대부분 꺼내놓고 있으니 계산하기가 아주 쉬워졌다. 버스를 타도 핸드폰으로 해결할 수 있다(이건 핸드폰이 아니라, 신용카드로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괜히 핸드폰 편을 들고 있다. 편애다.)


발언권이 커진 핸드폰은 나에게 고정적인 자리를 요구했다. 지갑이 피해자가 되었다. 수십 년간 부동의 자리였던 오른쪽 뒷주머니를 핸드폰에게 내주게 된 것이다. 핸드폰의 자리가 고정되니 뜻밖에 편한 점이 많았다. 의리보다 편리를 택하는 인간의 속성... 그 바람에 지갑은 왼쪽으로 옮겨가야만 했다.


나이를 지금 만큼 먹었으면 이 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나의 지론인 ‘세상에 좋기만 한 일은 없다’가 본 모습을 드러낼 순서라는 것을 말이다. 


피아노 연습을 하러간 그날은 조금 일찍 도착했다. 앞 시간 연습이 모두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선호하는 도 방에 들어가지 못 했다. 피아노 연습실은 모두 9개다. 도~시까지 계이름 달린 방 7개에 #(샵)과 b(플랫) 방 각 하나씩을 더해서 그렇다.


내가 피아노 연습을 하는 구립 청소년 문화센터


나는 도 방을 선호한다. 피아노 소리도 좋지만, 창문이 있는 것은 더 좋다. 그날은 도 방에서 연습하던 앞 사람이 아직 끝나지를 않아서 미 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냥 적응하면 되는데, 괜히 불편함을 느끼고는 얼마 연습하지 않고 나와서 도 방을 기웃거렸다. 그새 앞의 회원(요새는 이 단어를 여러 곳에서 쓴다. 편한 점도 있다. 호칭이 마땅치 않을 때 쓰기에 괜찮다.)이 나가고 방이 비어 있다. 


악보책, 안경, 가방 등을 주섬주섬 챙겨서 서둘러 방을 옮겼다. 연습은 순조로웠고, 그날의 과제 곡도 통과했다. 문제는 집에 갈 때 불거졌다. 가방에 악보책 등을 넣으면서 핸드폰을 챙기는데, 없다. 가방 속도 다시 보고, 바지 주머니도 다시 뒤졌는데, 없다. 혹시 피아노 뒤로 떨어졌나 보았는데, 떨어질 틈도 없다. 


아차. 미 방에 두고 왔나? 아무도 없기에 방에 들어갔다. 늘 핸드폰을 놓는 자리인 피아노 왼쪽 끝의 턱이 있는 공간을 보았다. 없다. 불편이 불안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아, 차에다 놓고 내렸나보다. 집에서 갖고 나오기는 했나? 갖고 나온 것 같다.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 


내 차를 주차해놓은 공영주차장까지는 15분 정도를 걸어야 한다. 평소에는 걸어다니지만, 급한 마음에 버스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버스 카드... 핸드폰 케이스에 들어있다. 걸어가며 공중전화를 떠올렸다. 부질없다. 공중전화 없어진 지가 언젠데...


카페에 있는 아내에게 주차장에 가보라고 하려 했지만, 전화가 없다. 길가는 사람에게 전화기를 빌려 달랠까? 괜히 의심받을 거 같은 생각이 들어 망설였다. ‘든 자리는 표 안 나도, 난 자리는 표 난다’더니, 그게 사람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몇 년 동안 이런 상황, 즉 핸드폰을 몸에 지니지 않고 찾는 상황을 경험해보지 않았다. 정말 무기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공황상태 비슷한 단계에 접어들었다. 


억지로 냉정해졌다. 어떻게 할까. 주차장까지 가야 하나. 그 짧은 거리를 택시 잡기도 그렇고,  어떻게 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피아노 연습할 때까지는 핸드폰이 있었던 것 같다. 다시 한번 문화센터로 가보기로 했다. 


점심시간이라 방들은 비어 있다. 괜히 도 방과 미 방을 기웃거렸다, 바보같이. 끝 방에 있는 선생님을 찾아갔다. 

“혹시 핸드폰...” 

“아, 예. 이거~ 미 방 피아노 위에 있기에 누구 건가 하고 챙겨놓았어요.” 

핸드폰을 건네주는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상황은 단순했다. 미 방에서 도 방으로 옮길 때 빼놓고 갔던 것이다. 그 사이 선생님은 빈 방에 핸드폰만 있으니 챙겨놓았던 것이고.


내 심리상태는 상황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다음번에 잘 챙겨야지 하고 결심을 다진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어떤 사람은 집에 안경 찾는 안경도 둔다지만 이건 그럴 일도 아니고. 그나마 해피엔딩 해프닝으로 끝난 게 다행이다 싶으면서 많이 허탈했다.


며칠 후, 젊은 후배(젊다고 해도 오십은 훌쩍 넘은)를 만난 자리에서 이 소리를 했다. 치매 걱정 뒤끝이었나, 어쨌나. 젊은 후배 왈. “선배, 그러니까 카드를 핸드폰에 아예 넣어버리세요. 넣어드릴까요?”하며 핸드폰에 결제 기능을 심는 방법을 다시 꺼내든다. 뭐? 이 본질을 모르는 녀석 같으니. 그러면 핸드폰 잃어버리면 더 큰 일이잖아. 


혼란이 가중됐다. 핸드폰이 문제인 거야, 아니면 신용카드가 문제인 거야. 아니면, 둘 다? 아니다 내가 문제인가? 그것도 아니면 지갑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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