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가능성이 중요한 이유(1)
746(7/5)-1212(7/6)-1275(7/7)-1316(7/8)-1378(7/9)-1324(7/10)-1100(7/11).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에 열거한 숫자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것이다. 괄호 안의 날짜로 짐작되는 숫자가 없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확진 환자수다. 이 숫자들을 토대로 수도권 지역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7월 12일, 오늘부터 조정됐다.
코로나19 걱정은 뒤로 한 채 나는 어젯밤 10시부터 진새벽까지 TV로 윔블던 남자 테니스 결승전을 시청했다. 어제 결승에서 맞붙은 두 선수는 노박 조코비치(세계 랭킹 1위. 세르비아)와 마테오 베레티니(세계 랭킹 10위권. 이탈리아)였다.
만약 이 결승전에 우리나라의 권순우 선수가 올라왔다면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의 언론들도 모두 ‘이변’이라며 떠들어댔을 것이다. 권순우 선수의 세계 랭킹은 70위권 정도다. 이번 윔블던 1차전을 통과하고 2차전에서 패해 탈락했다. 그러니까 64명이 겨루는 데까지는 올라왔고, 거기서 멈췄다. 자신의 랭킹에 부합하는 예측 가능한 성적이다. 내가 생각하는 ‘예측 가능성’이란 이런 것이다.
물론 스포츠에는 예외도 있고, 이변도 있다. 그런 것이 없고 매양 예측대로만 모든 게 이뤄진다면 재미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제 결승전의 승자는 누구였을까. 랭킹 1위 조코비치였다. 예상대로 된 것이다. 그렇기는 하나...
조코비치의 상대 베레티니는 강력한 선수였고, 조코비치는 진땀을 뺀 끝에 힘들게 승리했다. 손쉬운 승리가 아니었기에 더 돋보였다. 시상식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추켜세웠다. 도전자 성격이었던 패자(敗者)는 조코비치의 뛰어남에 찬사를 보낸 후 오늘 경기는 자신의 커리어의 시작이라며 겸손함과 자신감을 동시에 표했다. 승자는 패자의 전도유망함에 기대를 나타내며 박수를 보냈다. 이것 역시 예측 가능한 일이었으나 아주 보기 좋았다.
그런데 한 가지. 이 경기에서 전혀 예측 가능하지 않은 모습이 있었다. 경기장에 관중이 꽉 들어찬 것이다. 이 코로나 시국에, 특히 상태 안 좋은 나라 영국에서... 게다가 마스크도 쓰지 않고... 예측 가능하지 않은 모습은 끝이 없었다. 마스크를 쓴 사람은 10명에 한 명도 안 되는 듯했다. 시상에 나선 영국의 왕세손비(황세손비?)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요즘 유행어를 빼놓을 수 없다. 머선 129?
같은 시각.
아내는 옆 방에서 컴퓨터와 씨름하고 있었다. 컴퓨터와 씨름을 한 것인지 코로나19와 씨름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낑낑대고 있었다. 백신 접종 예약이 안 되는 모양이다.
아내보다 나이가 몇 살 많은 나는 한 달 전 백신을 맞았다. 망설이다 맞았다. 부작용이 예측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망설였다. 정부 관계자는 백신을 맞아서 누리게 되는 이익이 부작용보다 크니까 맞으라고 했다. 목숨을 담보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혈전이 생기면 그 환자는 사실상 대책이 없다. 그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때 아내가 나의 백신 접종 예약을 해 주었다. 내가 예약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쉽게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 아내가 어제는 낑낑댔다. 남편이 TV를 보며 감탄하는 그 새벽에. 아침에 뉴스를 보니 어제 접속자가 폭주해서 인터넷이 거의 마비된 모양이었다.
오늘 아침 식사 때 아내와 나의 대화다.
“거기서 승질 내면 절대 안 돼.”
아내는 인터넷의 트래픽 컨트롤 문제를 들먹이다 내 얼굴을 정면으로 보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 말 뒤에는 ‘당신은 예약 할 수 없었을 거야’라는 의미가 숨어있는 것 같았다. 아내도 예측 가능하고, 나도 예측 가능한 이야기다.
나는 아무 소리 보태지 않고, 몇 시에 예약을 했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1시 반쯤인가 라고 했다. 내가 윔블던 시상식을 넋 놓고 보고 있던 시간이었다.
내가 요즘 감탄하는 것 가운데 택시 예약 시스템이 있다(택시 예약은 물론 아내가 한다. 이유는 내가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어플로 예약을 하면 택시가 우리 집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인다. 참으로 신기방기하다(60 여년 만에 처음 써보는 단어다. 신기방기. 써놓고 보니 라떼 확정이다). 나는 이 시스템이 신뢰를 얻는 이유의 큰 부분이 예측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예약이 확정됐다. 그 차가 나에게 다가온다. 빨리 내려가서 타야 한다.’
만약 화면상으로는 차가 도착했는데, 현실에서는 오지 않는다면? 예측 가능성이 무너져버린 자리엔 뭐가 자리 잡을까.
예측 가능성이란 그런 것이다. 향후 내 삶의 방향과 행동 방식을 결정하게 하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일상에서 매일 같이 그것을 의식하고 살지는 않지만. 예측 가능성은 늘 나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한 달 전 아내가 백신 접종 예약을 할 때 ‘백신 접종 신청을 하라’는 행정기관의 메시지가 나에게 오지 않았다. 그리고는 대상이 아닌 아내에게는 접종하라는 연락이 왔다. 도무지 예측이 불가능했다. 아내는 나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고는 나 대신 자신이 예약을 해주었다. 다행히 어제, 아내는 자신의 차례에서 예약 문자를 받았다. 하지만 실제 예약은 만만치 않았다.
위의 문자는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접종 후 14일째 됐을 때 나에게 들어온 문자 메시지다. 4일부터 28일 사이에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백신 접종 때 내가 걱정하던 것이 근거 없는 기우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늘이 26일째니까 숨죽이며 지켜봐야 할 시간이 아직 이틀 더 남았다. 그런데 28일이라는 시한은 정말로 예측 가능한 것일까. 다른 것들은 별로 예측 가능하지 않았는데 이건 과연 괜찮을까. ‘내가 의심이 많아서 품는 의문일까.’
아침 뉴스를 보니 오늘부터 시행되는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 방안과 관련하여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방아가 난무하는 모양이다. 다음은 내가 생각해 본 사례다.
5시 반쯤 카페에서 셋이 만나서 이야기하다 6시가 넘었다. 그러면 어떡하나? 이 정도는 쉬운 문제다. 당연히 한 사람은 사라져야 한다.
6시 45분에 우리 부부가 길을 가다 아는 사람을 만났다. 할 얘기가 있는 관계다. 별로 어렵지 않은 문제다. 각자 갈 길 가며 전화로 대화하면 된다.
끝으로 조금 어려운 문제다.
나는 택시도 여러 명이 타면 안 되는 줄은 몰랐다. 두 명만 타야 한다나? 그러면 운전기사는 투명인간인가?
5시50분에 세 사람이 택시를 탔다. 잠시 후 6시가 넘었다. 그러면 한 사람은 내려야 하나? 그런데 만약 가고 있는 길이 자동차 전용도로인 올림픽도로 상이라면.
예측 가능성이 아주 낮은 험한 날들을 살아가면서 내가 예측 가능성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이다.
*오늘은 아내와 함께 병원에 가야 해서 다른 날보다 조금 빨리 글을 올린다. 지금 가는 ㅇ병원은 외래 진료를 예약 시간에 어긋나지 않게 시행해서 마음이 편하다. 전에 다니던 ㅅ병원은 늘 30분 이상 기다려야 했다. 30분 넘게 기다리는 것은 예측 가능했으나, 예약 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이건 말이 안 된다. 많은 병원이 이런 상황이다. 내가 예측 가능성에 집착하는 또 다른 이유다.
*사진 : 출처-pixabay. 다 아는 사진이라 설명은 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