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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Jul 19. 2021

신발 속의 모래 몇 알

사소한 일로 속 끓인다고 자책하지 말자

1주일 넘게 생고생을 하며 사막 횡단에 성공한 철인(鐵人)에게 물었다. “당신이 사막을 횡단할 때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철인의 답변은 예상과 달랐다. 타는 듯한 갈증도 아니었고, 걷기 힘든 오르막길, 아래로 푹푹 꺼져서 걷기 힘든 모래 바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 등이 아니었다. 


“신발 속에 들어있는 모래 몇 알이었습니다.”


답변을 듣고 나면 공감이 될 것이다. 운동할 때 신발 안에 들어있는 작은 돌멩이나 안 보일 정도의 작은 가시가 얼마나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지.


두 달 여 전 경주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오기 전날 타이어의 공기압을 체크했다. 먼 길을 운전할 때 타이어 공기압을 한번씩 점검하던 습관에 따른 것이다. 요즘은 계기판에 타이어 공기압 상태가 나타나는 모드도 있어서 아주 편한 세상이다(다만 차가 출발한 후 주행중에 확인이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3일 전 서울에서 내려올 때 타이어 공기압을 맞췄는데 그날 체크를 해보니 세 개의 바퀴는 40~41psi(*)를 나타내는데, 운전석 뒤의 바퀴는 36밖에 되지 않는다. 

이상을 느끼고 나서는 운전중에도 몇 번씩 타이어 공기압을 확인하고는 했다. 

다음 날 출발 전에 다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눌러보았는데, 그것으로는 자세한 확인이 어렵다. 주행하기에 부적합하지는 않은 듯했다. 서울까지는 무사히 돌아왔지만 공기압 차이는 조금 더 벌어졌다. 


카센터를 찾아 확인을 요청했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며 기다리는데, 엔지니어가 나를 불렀다. 가서 보니, 타이어에 조그만 못이 박혀 있었다. “지렁이(**)를 박으면 되죠?”하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그렇게 조치를 했다. 비용도 얼마 하지 않는다.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했다. 


그리고 이틀 후 타이어에 이상이 없는지 다시 점검을 했다. 문제의 바퀴가 다른 바퀴들에 비해 2 정도 공기압이 낮다. 그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의아했다. 왜 그 바퀴만 계속 그렇지? 펑크가 하나 더 있나. 


1주일이 지나자 공기압이 4까지 차이가 났다. 36에서 더 오르지를 않는다. 40으로 맞춰놓았는데 1주일 새 4나 빠진 것이다. 이러다보니 내 머릿속에는 온통 타이어 생각뿐이었다. 운전할 때는 물론이고 운전하지 않을 때도 그랬다.


결국 다시 카센터를 찾아갔다. 이번에는 집에서 가까운 데로 갔다. 전에 간 곳보다 작지만 집에서 가깝기에 찾은 것이다. 친절했다. 공기압을 맞춰준 후 “일단 다녀보고 이상이 있으면 다시 오라”고 했다. 1주일이 지났는데, 또 다시 공기가 빠진다. 그 1주일 동안 나는 운전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타이어 공기압을 체크했다.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마다 ‘신발 속의 모래알’을 떠올렸다. 


결국 열흘만에 다시 점검에 들어갔다. 엔지니어가 예상 답안을 내놓았다. 지난번 때운 부분에 이상이 생겼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일도 있느냐 했더니, 펑크가 클 경우 그럴 수도 있단다. 동업자끼리 보호하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엔지니어는 한동안 바퀴를 돌려보았다. 지난 번 때운 곳을 찾은 모양이다. 비누를 뿜었다. 아주 미세하게 거품이 생긴다. 펑크다. 예상이 맞았다. 엔지니어는 지난번에 박아 넣은 ‘지렁이’를 제거했다. 새로운 지렁이를 넣겠다면서 가장 큰 지렁이라고 설명을 해줬다. 만약 이걸로 막아지지 않으면, 타이어를 교체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한동안 씨름하더니 새 지렁이를 넣고, 타이어의 공기압을 모두 맞췄다.

지렁이 박은 사진을 하나 찍어두었다. 사진 중앙 부분의 주황색이 펑크를 때우기 위해 박아넣은 '지렁이'다.


집으로 가는 길, 계기판으로 점검을 해 봤다. 네 바퀴 간에 차이가 없다. 방금 공기를 넣었으니 설사 펑크가 있더라도 체크가 안 될 수도 있다. 다음 날. 차를 몰고 나가면서 다시 걱정이 되었다. 체크했다. 왼쪽 뒷바퀴가 다른 세 바퀴들보다 1이 높다. 이상이 없다는 뜻이다 30분쯤 주행 후 내릴 때 확인했더니, 네 바퀴 간에 차이가 없다. 다행이다.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다시 2주일이 지났다. 지금은 하루에 두 번 정도 체크를 한다. 주행하기 시작한 직후, 그리고 주행을 끝내면서. 전혀 이상이 없다. 다른 바퀴들과 같거나 간혹 1정도 높은 상태를 나타낸다. 이제 됐다. 신발 속의 모래를 털어낸 느낌이다. 그동안 아무것도 아닌 듯한 일로 얼마나 마음을 끓였나 생각하니, 어이가 없기도 했다. 


사는 건 이런 모양인가보다. 사소한 일 때문에 걱정하고, 사소한 일로 분개하고, 별 거 아닌 일로 속을 끓이고...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중차대한 일, 역사를 뒤바꿀 엄청난 일 때문에 마음 졸이며 걱정하고, 세상이 깜짝 놀랄 일 때문에 기뻐 미칠 듯한 경우가 보통 사람들에게 일어날 일이 얼마나 될까. 


누가 나에게 “요즘 가장 기분좋은 일은 무엇입니까?”하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내 자동차의 타이어 공기압이 아주 잘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일지도 모른다. 그래요, 나는 사소한 일에 목숨 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저러나, 코로나 바이러스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psi : 타이어의 공기압을 나타내는 단위. psi는 Pound per Square Inch의 약어다.

**타이어 펑크를 때울 때 사용하는 고무를 흔히 지렁이라고 한다. 모양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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