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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Jul 22. 2021

승부의 세계

올림픽 ‘참가’에 의미를 둬야하는 많은 선수들을 위하여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익히 들어본 말이다. 야구, 배구, 농구, 테니스, 골프 등 운동 경기를 관람할 때 자주 듣는 이야기다. 운동뿐만 아니라 경쟁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말은 진리일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는 이야기를 바꿔 말하면, 냉정하지 않은 자는 승부의 세계에서 승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냉정해야만 생존할 수 있고, 냉정하지 않으면 그 존재가 위협받는 세계. 각박하고, 두려운 세계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이 진리가 아니었으면 한다.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사람들이 그 말을 열심히 좇아가지 않을 것 아니겠는가. 


지금부터, 승부의 세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그렇게 살지 않는(것처럼 보이는) 운동 선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는 LPGA(*) 골프 경기를 즐겨 시청한다. 남자 골프(PGA) 경기는 잘 안 본다. 우리나라의 골프 경기도 마찬가지다. 남자 프로 골프는 사람들의 세계가 아니라, 외계인들의 세계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보통 주말 골퍼라면 드라이버 샷으로 캐리 180m를 치면 괜찮은 축인데, 그 거리의 1.5배가 넘는 300m를 날리는 것을 어떻게 같은 ‘사람’이 하는 경기라고 할 수 있겠는가.(*캐리 : 골프공이 바닥에 떨어진 후 굴러가는 거리를 빼고, 순전히 허공을 날아가는 거리. 300m면 축구장 세 배정도의 거리다.)

골프는 흔히 멘탈(mental) 경기라고 말한다. 육체적인 능력이 중요하지만, 정신력이 강하지 않으면 결코 강자가 될 수 없는 경기가 골프다. 그래서 데뷔 초기 어린 나이에 멋모르고 우승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몇 년 동안 우승 못 하던 사람이 새삼스레 우승하는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우승은 못 하고 매번 준우승에서 멈추는 선수도 있다. 


이 LPGA 대회에서 특이한 이력으로 눈길을 끄는 선수가 있다. 특이한 이력이란 ‘연습을 가장 적게 하는 선수’라는 타이틀이다. 승부의 세계에서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사람, 냉혹하지 않은 사람은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려운데 이 선수는 정 반대로 선수생활을 해 나간다. 보통 선수들은 시합 전에 한 시간 정도는 연습 스윙을 하는데 이 선수는 30분 정도만 연습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 선수들이 하루 경기가 끝난 후에는 다음날에 대비해서 남아서 연습을 하는데 이 선수는 그런 연습도 하지 않는다.


이 선수의 이름은 펑샨샨(冯珊珊. Shanshan Feng), 중국 선수다. 펑은 2008년에 LPGA에 데뷔해서 13년 동안 10승을 거뒀다. 메이저 대회 1승도 있다. 그리고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차지하기도 했으니 실력에 의심을 품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펑샨샨이 올해 5월 하순에 열렸던 Bank of Hope LPGA Match-Play 경기에서 4강에 진출했다. 매치 플레이는 보통 골프 경기와는 달리 선수끼리 1:1로 토너먼트 시합을 해나가는 경기다. 펑은 이 경기의 준결승에서 패하는 바람에 결승전이 아닌 3~4위전에 나가야했다. 


이날 중계방송을 끝까지 못 보는 바람에 나중에 결과를 확인했다. 그랬더니 이 펑 선수에 대한 특이한 기사가 떠 있다. 펑샨샨이 3~4 위전 경기에서 상대방에게 기권해서 4위가 됐다는 것이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는 진리 아닌 진리를 몸과 머리에 새겨 넣었더라면 그리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냉혹한 승부 세계에서 승부사답지 않게 패배를 자인하다니. 펑샨샨이 4위를 해서 받은 상금과 3위의 상금 차이는 2600만원이다. 적지 않은 돈이다.


펑샨샨은 기권패를 자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5일 동안 7번이나 경기하는 것은 너무 힘들어요. 나는 필드에서 이미 할머니 나이예요(그녀의 나이는 31세다). 다음 주에 메이저 경기(US 여자 오픈)가 있어서 그걸 준비하기 위해서도 휴식이 많이 필요해요.(**)” 그렇게 펑샨샨은 스스로 기권패를 선택했다. 


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펑샨샨의 체형은 별로 운동선수 같지 않다. 외형으로 볼 때 이 선수는 정상급 선수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성적은 꽤 좋다. 어떤 선수는 퍼팅할 때 긴장감 때문에 손을 덜덜 떨기까지 하는 필드에서 펑샨샨은 상대 선수에게 농담도 건네고 유쾌하게 웃기도 한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라는 말을 무시하기라도 하듯.

이번 올림픽은 많은 경기가 무관중으로 치러진다고 한다.

1년 늦은 도쿄 올림픽이 내일부터 시작된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란 어떤 것인지를 적잖이 보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참가자가 승리를 염원하는 그 승부의 세계에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승자보다 패자(敗者)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들을 떠올리며 몽니부리듯 ‘냉정하지 못한’ 생각을 해 보았다. 올림픽이 별 탈 없이 진행되기를...


*LPGA는 Ladies Professional Golf Association의 약자다. 미국의 프로골프 협회이지만 ‘세계 협회’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1998년 박세리 선수가 US 오픈이라는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것도 이 LPGA 주최 대회였고, 박인비 선수가 한동안 세계 1위를 한 것도 LPGA였다.

**펑샨샨이 메이저 대회에 대비하기 위해 기권한 것을 두고 ‘정말로 냉정한 승부사’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혹시 있을지 모르겠다. 내 생각은 글쎄?? 다.

***우리나라의 박인비, 김효주 등과 펑샨샨의 대결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펑샨샨의 이미지는 네이버에서 ‘펑샨샨’으로 검색하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진들을 볼 수 있다. 그 URL을 붙여 보았으나, 연결이 원활하지 않아서 더 이상의 정보를 제공하기 어렵다. Latte is...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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