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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Jul 29. 2021

주부의 마음

안 해 본 사람은 몰라요

대파를 다듬는 일은 음식 재료를 만지는 일 가운데 가장 하기 싫은 일이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내 경우는 그렇다. 파는 가장 기본적인 식재료이기 때문에 음식을 한다면서 파를 만지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데 왜 그 일이 그렇게 하기 싫은 걸까.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대파 한 단을 사면 우리 부부는 대략 3주 정도를 먹는다. 지난 주 금요일은 그 귀찮은 대파 다듬기를 해야 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다른 때와 달리 가벼운 마음으로 그 일을 했다. 대파 한 단을 1650원에 샀기 때문이다.


대파 가격은 4년 전 내가 음식을 시작한 이래로 지난 해까지 한 단에 1900원~2500원 정도였다(내가 이용하는 마트 기준이다). 그러더니 지난 해 언제부터인가 파값이 오르기 시작해 4천원을 넘어 5천원까지 갔다. 파를 사야 할 때 그 가격을 보고는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란히 정렬한 대파를 보니 마음이 든든하다.

2천원과 5천원의 차이라고 해야 3천원에 불과하다. 그걸 3주로 나누면 한 주에 1천원 꼴이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가격의 1/4밖에 안 된다. 그럼에도 마트에서 5천원에 대파를 선뜻 구입하는 주부(主婦)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주부(主婦)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였다면, 대파 앞에서 고민하는 아내에게 큰 소리나 쳤을 것이다. “그냥 사”라고. 그건 주부의 마음이 아니다. 


마트에서 장보고 온 날은 채소로 된 반찬을 집중적으로 만드는 날이다. 혹시라도 채소가 상할까 마음이 급하기 때문이다. 지난 금요일도 그랬다. 


먼저 시간이 걸리는 콩나물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멸치로 국물을 낸 후 다시마 약간과 무를 넣고 국물을 만들었다. 그 사이 콩나물을 다듬었다. 파 다듬기에 버금갈 정도로 귀찮은 일이지만 참고 했다. 콩나물국을 대량으로 만들면 몇 차례 먹을 수 있으니까. 먼저 국으로 한번 먹고, 다음엔 콩나물 죽을 만들어 또 한 번, 마지막에는 냉콩나물국도 한번 먹는다. 참 알뜰하다. 여전히 콩나물은 서민의 음식이라 할 만하다.


이번 주의 핵심 반찬은 표고버섯이다. 소고기 표고버섯 조림을 만들기로 했다. 나중에 궁중떡볶이용으로 쓸 큰 표고버섯 2개를 제외하고 전부 도톰하게 썰었다. 양념간장에 잠깐 절인 소고기와 파, 다진 마늘 등을 넣고 표고버섯 조림을 만들었다. 조리과정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재료를 웍에 한꺼번에 쏟아넣고 졸였다. 시식을 해보니 먹을 만했다.


소고기 표고버섯 조림을 만들다.


이번주에는 달걀-꽈리고추 조림도 만들었다.  달걀에 간이 잘 배도록 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인내가 필요하다. 


가지나물도 했다. 지난번에는 가지볶음을 했는데 별로 재미가 없었다. 다시 가지나물로 돌아갔다. 아주 여러 차례 해본 반찬이라 특기할 사항이 없다시피 하다.


가지나물, 달걀-꽈리고추 조림, 콩나물(콩나물국의 파생 반찬이다), 오이김치 /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마지막으로 오이김치. 두어 달 전 물김치를 처음 만들어 본 후 오이김치도 해 보았다. 이게 오이김치냐 오이무침이냐 물으면 대답하기 난감하지만 아무튼 나는 그것을 오이김치라 명명했다. 오이소박이처럼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음식과는 차원이 다른 저차원의 반찬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맛은 결국 비슷하다. 


오이 한 개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굵은 소금에 30분 정도 절인 후 소금을 씻어낸다. 물기를 뺀 후, 멸치액젓과 마늘,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린다. 조리과정은 이걸로 끝이다. 너무 단순해서 내 스스로도 무언가 이상하긴 하다. 다음번에는 제대로 된 레시피를 참조해서 업그레이드를 시도해 봐야겠다. 


점심 먹고 한 숨 돌린 후 반찬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 반찬들을 다 만들었더니 저녁 준비할 시간이 되었다. 세 시간 가까이 서 있었더니 다리도 아프다.


만약 아내가 부엌 살림을 하면서 이렇게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나는 “그걸 꼭 그렇게 한꺼번에 (미련하게) 다 해야 하느냐”고 한 마디 했을 가능성이 크다. 채소가 상할까봐 마음 급해하는 심정과, 시작한 김에 일을 마무리 해야겠다는 주부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탓이다. 


그런 점에서는 나에게 아무 잔소리 안 하고 막판에 “뭐 좀 도와줄까” 하고 이야기하는 아내의 태도가 오히려 마음 편하다. 그러고서 난장판이 된 부엌 정리를 해주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경험 있는 자의 손쉬운 점수 따기다.


이 글을 쓰면서 ‘주부’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 가는 안주인을 가리키는 ‘主婦’는 있는데, 그 남성형에 해당할 主夫는 없다. 그 대신 부엌에서 일하는 남성이라는 뜻의 廚夫만 있다(*이 단어가 나의 브런치 필명인 Cinderello에 해당하는 단어쯤 되겠다). 조금 아쉽다. 내가 主夫의 실증 사례인데 설명할 길이 없다. 


나는 스스로 나 자신을 부엌의 남성 퍼스트 무버(First Mover)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세상이 바뀌다보면 머지않아 주부(主夫)라는 단어도 표제어로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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