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라떼 i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데렐로 Aug 12. 2021

라떼 맨의 환경 보호 실천

살다 보면 어떤 일이 몰려서 벌어질 때가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데 말이다. 


며칠 전의 이틀은 나에게 ‘환경’이 몰려든 날이었다.


요즘 책을 잘 안 읽어서 읽어야 할 책이 쌓이고 있다. 내가 산 책, 선물로 받은 책 등이 7권이나 된다. 나는 그 책들을 쌓아놓고, 책을 빌리러 남산도서관에 갔다. 일종의 ‘배책진(背冊陣)’이라고나 할까.


도서관에서 빌리려고 적어놓은 책 중에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마이클 셸런버거 지음)이 있었다. 이 책의 부제는 ‘종말론적 환경주의는 어떻게 지구를 망치는가’다. 환경에 관한 주제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삐딱한 시각이 나의 취향과 들어맞았다.


도서관에 도착해서 자료를 검색했다. 대출 불가, 예약 후 대기를 해야 한다는 안내가 떴다. 빌릴 책이 여러 권 있었기 때문에 나는 대기가 아니라 포기를 선택했다. 환경은 뒷걸음질 쳐서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설거지를 할 때 수세미에 세제를 두 번 펌프질했다. 최근에는 세 번씩 짜서 썼는데. 책은 못 빌렸지만, ‘환경’이라는 생각이 내 머리 속에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다음날 아침. 아내와 평소보다 조금 늦게 밥을 먹는데 KBS TV의 <아침마당>에 배우 박진희가 초대 손님으로 나왔다. 내가 드물게(!) 부정적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 연예인 가운데 하나다. 원래는 호불호가 없는 배우였는데, 일전에 어떤 프로그램에서 그녀가 열혈 환경운동 실천자라는 걸 알고 나서 호(好) 쪽으로 두 걸음 옮겨갔다. 정확히 말하면 환경운동 때문이라기보다 표리(表裏)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날의 이야기 주제도 환경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식탁에서 일어나 화면을 보고 돌아왔다.  소리도 조금 키웠다. 그 배우는 머리를 짧게 자른 모습이었다. 아내가 말했다. “세제랑 물 아끼려고 머리 잘랐나봐.” 이런 실천법도 있을 수 있구나. 나로서는 처음 해보는 생각이었다. 


휴지 대신 손수건 사용하기, 일회용 아기 기저귀 대신 천 기저귀 사용하기 등 익히 아는 내용도 있고, 샴푸바(bar)나 주방세제바(bar)처럼 처음 듣는 이야기도 있었다. 나는 귀로 TV를 들으면서 밥을 먹다 쉬는 틈에 떠들기 시작했다. 거의 동시통역 수준의 묘기를 펼치는 순간이었다.


“샴푸도 그렇지만, 린스를 꼭 써야 돼?” 누가 들으면 ‘그러니까 라떼 소리 듣는 거야’라고 할 만한 소리를 떠들었다. 발동이 걸렸다.



(이하 컬러 글씨는 발동 걸린 신데렐로가 아내에게 떠드는 소리다)

호텔 중에 요즘 환경보호 차원에서 장기 투숙자들에게 시트 갈지 않기와 수건 덜 쓰기 협조 요청을 하잖아. 그거 그렇게 하면 안 되지. 그렇게 해서 아끼는 비용이 있으면 그건 전부 다, 혹은 일부라도 투숙객들에게 돌려줘야지. 그런데 그렇게 하는 호텔 한 군데도 못 봤잖아. 그럼 안 되는 거 아냐. 


요즘 같으면 포인트 적립도 해 줄 수 있을 거고, 호텔 내 카페에서 커피를 서비스 할 수도 있잖아. 그런데 이익을 보는 호텔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고객들한테 협조만 요청하잖아. 그러니까 협조가 잘 안 되지. 이익의 공유가 안 돼서 협조가 안 되는 게 아니라, 인식과 마음의 공유가 안 되니까 협조가 잘 안 되는 거야.(환경운동가 나셨다 그죠?)


태평양에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섬이 있다잖아. 한반도의 몇 배 크기가 된다는. 그 문제 해결해야 돼. 근데 왜 해결이 안 되는지 알아? 


환경 보호와 관련해서 유의해야 할 게 있지. 누가 누구를 가르치듯이 하면 안 돼. 함께 실천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돼. 누군 가르치고 누구는 배우는 사람이 되면 능동적이기가 힘들어.(사돈 남 말한다.)


아는 소리, 모르는 소리 마구 떠들어댔다.(*신데렐로 아내의 참을성 능력이 +10 향상되었습니다.) 


옛날 생각이 났다. 25년 전 라디오 PD를 하다가 회사가 케이블 TV 방송을 시작하면서 TV PD로 ‘전업’ 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내가 처음으로 만든 TV 프로그램이 ‘퀴즈! 푸른세상’이라는 환경(보호) 프로그램이었다. 나름 앞서간다고 생각했고 공익적 목적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으나... PD의 능력 부족으로 한 텀(6개월)만에 막을 내린 비운의 프로그램 ‘퀴즈! 푸른세상’.


밥을 먹고 나서 TV를 보러 옮겨갔다. 샴푸와 린스에 대한 내 이야기를 들었는지 박진희가 그 이야기를 이어받았다(이건 전적으로 내 생각이다). 자신의 아이들 머리를 감기는데 샴푸도 린스도 쓰지 않는단다. 나는 박진희 배우의 의견에 적극적인 동의를 표하면서 옆에 있는 아내에게 ‘보라’고 했다.


박진희가 물티슈를 세척해서 1회 이상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저건 아니다’고 했더니 아내가 그렇게 하는 것보다, 한번 쓴 후에 더 더러운 걸 초벌 닦는데 쓰면 된다고 했다. 그렇다. 세수한 물을 변기에 재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인 거다. 


나는 물티슈가 과연 꼭 필요한가 하는 의문을 계속 갖고 있다. 하지만 물티슈는 벌써 널리 퍼져서 바꾸기가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절충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게 필요할 것이다. 


나는 물티슈의 성분도 궁금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많은 양의 물티슈가 1천원도 안 하는지 의문이다. 아주 최근에는 10팩에 1천원이라는 충격적인 광고도 보았다. 도대체 무슨 성분으로, 어떻게 만드는 걸까.


박진희는 이야기를 마친 후 박수 받고 퇴장했다.


나는 아내에게 끝으로 한 마디 더 중얼거렸다. 

“환경 보호를 위해 가장 중요한 건 각 개인이 불편을 감수할 의지가 있는가 하는 점이지...”

포즈(pause)없이 아내의 답이 돌아왔다. “하던 대로 하셔.”

‘그래, 환경 보호는 1회성이 아니라, 몸에 밴 습관이 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지.’ 

매거진의 이전글 40년 째 미용실에서 머리 깎는 남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