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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Aug 16. 2021

골프, 거짓말, 그리고...

자신의 실수를 고백하고 패배하다

흔히 ‘골프는 신사의 운동’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OO은 □□이다’처럼 선언적으로 이야기되는 것들은 사실은 그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신사답지 못할 요소가 많기 때문에 신사의 운동이라는 말을 통해 균형을 잡으려 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골프는 공을 가지고 하는 스포츠 가운데 가장 넓은 공간을 사용하는 운동이다. 내가 넓이를 언급하는 이유는 그 넓은 공간 가운데 눈에 잘 안 띄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주로 아마추어 세계의 이야기인 공 바꿔치기가 거기서 벌어진다. 숲 쪽으로 친 공이 없어졌는데 그 공을 찾으러 간 플레이어가 슬그머니 다른 공을 떨어뜨려놓고는 공을 찾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전문(?) 용어로 알까기다. 이 알까기의 달인으로 유명한 사람이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다. 클린턴은 멀리건으로도 유명하다.


올해 초 미국 대통령에서 물러난 트럼프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일은 열심히 안 하고 골프만 치러 다녔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실상 통계를 파악해보니 오바마보다 트럼프가 훨씬 더 많이 골프를 치러 다녔다고 한다. 그러자 트럼프는 말을 바꿨다. “나는 골프를 후딱 치고 들어와서 열심히 일했다”라는 식으로 말을 바꿨다.


여기서 한 가지 비교해 볼 게 있다. 클린턴과 트럼프의 골프에는 온갖 구설이 따라다니는 반면, 오바마의 골프는 상대적으로 구설이 적다. 트럼프에게는 반칙왕, 속임수 골프의 달인 같은 별명이 따라다니고, 클린턴은 앞에서 말한 알까기와 멀리건의 명수다. 그들의 반칙 행위 바탕에는 거짓말이 깔려 있다.

(*관련 블로그 https://blog.naver.com/gs92401037/222140268061)


이제 우리나라를 돌아보겠다. 지난 주말에 진행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대회에서 보기 드문 일이 벌어졌다. 박민지 라는 선수가 벌인 해프닝이 그것이다. 박민지는 이번 대회 전까지 올해에 6번이나 우승을 한 대단한 선수다. 그 바람에 좀 시들해졌던 KLPGA에 다시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우승을 할 가능성이 가장 큰 선수였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하나. 내가 이 박민지 선수의 팬이다(몇 년 전 첫 우승 후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고 팬이 되기를 자임했다).


대회 첫날인 금요일에 장을 보러 가는 바람에 TV 중계를 못 보았다. 저녁에 인터넷을 뒤져보았더니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발견되었다.


박민지가 벌타를 왕창 먹어서 어쩌구 저쩌구 하는 기사다. 그 영상과 설명을 찾아보았다. 박민지가 첫 번째 친 공이 없어져서, 잠정구(provisional ball)를 쳤고, 원래 친 공이 발견돼서 다시 그 공을 치고, 잠정구는 집어들고... 동반자들에게 이야기를 안 했다가...


대단히 복잡해서 이 과정을 낱낱이 설명하는 게 의미가 없으리라고 본다. 정리해 보면, 박민지는 룰을 어기고 플레이를 했는데 뒤늦게 그걸 깨닫고는 ‘자백’을 했다. 그 바람에 룰을 어긴 게 드러나서 무려 4벌타를 먹었다.


아래의 색 글씨는 이 상황을 보도한 뉴스 중 일부다.

KLPGA투어 최진하 경기위원장은 "동반 선수에게 아무런 의사 표시 없이 쳤다고 실토하지 않았다면 규정 위반 자체를 아무도 몰랐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면서 "그래도 규정 위반을 동반 선수들에게 정직하게 알린 것은 다행"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10813MW160048904004)


거짓말을 한 사람의 코가 피노키오처럼 길어진다면 세상은 도대체 어떻게 될까.


한국여자프로골프에도 전설적인 거짓말이 전해져온다. 스코어카드 조작을 통한 상대 선수 물 먹이기, 앞서 언급한 알까기 전문이라는 선수 이야기 등. 이들의 공통 분모는 거짓말이다.


클린턴과 트럼프 골프의 공통 분모 역시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골프 칠 때만 거짓말을 했을까.


섹스 스캔들과 연관된 클린턴의 거짓말이야 워낙 세계적인 이슈였으니까 생략하겠다. 트럼프의 거짓말 역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난 후 거짓말을 한 횟수가 1만번을 넘었고, 하루 평균 12번꼴이라고 보도했다.  

(*관련 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190429186700071?input=1195m)


할 말을 거의 다 했으니 거짓말과 관련한 이야기를 할 때 흔히 등장하는 ‘사지(四知)’가 나올 차례다. 후한 시대 양진이라는 인물과 관련한 고사다. 다 아는 이야기라 짧게 정리한다. 양진에게 은혜 입은 왕밀이라는 자가 감사하다면서 뇌물을 주었다. 양진이 안 받는다고 하자 왕밀은 아무도 모른다며 받으라고 했다. 이때 양진이 이야기했다. “아무도 모르긴.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네가 아는데.” 왕밀은 최소한의 양식과 양심은 있었던 모양이다. 부끄러워하면서 돌아갔다니 말이다. 지어낸 말인지도 모르겠다. 교훈을 위해.


거짓말을 이야기할 때 위의 사지보다도 더 실감나게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있다. 한 번의 거짓말을 덮으려면 스무 번의 거짓말을 더 해야 한다고 한다. 하기야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은 스무 번의 거짓말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겠다.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고백한 박민지 선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벌타의 부담을 이기지 못해 예선 탈락했다. 그리고 나는 거짓말 대신 패배를 선택한 그녀를 더 열심히 응원하기로 했다.

(*관련 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210814044100007?input=1195m)


제목은 영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를 원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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