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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Aug 19. 2021

치과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고통은 줄어들기 시작한다

치과를 무서워하는 모든 분들께 드리는 글

지난 월요일 오전 또다시 나는 치과 수술 의자에 누웠다. 그 의자에서 이미 여러 차례 천장 불빛과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이젠 익숙할 법 하건만 여전히 내게는 생경하고 살풍경하다.


이번에는 꽤 오래 편안했다. 잇몸 염증 제거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게 올 초였는지, 지난해였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이 정도면 되었다. 선방했다.


나는 젖니 시절부터 이가 부실했다. 젖니 부실한 사람이 영구치로 바뀌고 나서 좋아지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이〔齒〕가 부실한 이유의 50%는 선천적인 것으로, 나머지 50%는 관리 부실 탓으로 생각한다. 어릴 때 단 것을 너무 많이 먹었고, 게으르기까지 했다. 그러고도 건치를 바란다면 그건 정말로 염치없는 짓이다. 


신상필벌(信賞必罰). 치아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벌의 결과, 나는 지금 임플란트 4개, 브릿지 합계 10개, 크라운 대략 8개 등의 인조 치아를 장착하고 있다. 나머지 6~7개의 치아도 모두 신경치료 등을 받은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내 이는 현대 치의학의 경연장이다. 치의학의 발전 덕분에 나는 현재까지 연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옛말에 치아가 좋은 것은 오복의 하나라고 한다. 중국 경전에 나오는 오복에는 건치에 관한 내용이 없지만(*), 우리 민간 전승에서는 오복에 치아를 포함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60년쯤 살고 보니 좋은 치아는 삼복(三福)의 하나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번에는 앞니 잇몸 부분에 생긴 염증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마취를 포함해서 대략 30분 정도 걸렸으니까 대단한 수술이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환자 입장에서는 큰 수술이건 작은 수술이건 고통스럽기는 매 한가지다. 수술 시간이 짧아도 회복과정의 고통은 비슷하다.


수술 후 몇 시간은 고개를 낮출 수가 없다. 적어도 하루 이상은 얼음찜질을 하는 게 좋다. 특히 이번에는 지혈을 하느라 턱에 거즈와 테이프를 강하게 붙여놓아서 입을 벌리기도 힘들었다. 먹는 것이 제한됨은 물론이다. 뜨거운 건 며칠간 반드시 피해야 한다. 실밥을 제거하는 일주일 후까지 드레싱과 후속 관리를 위해 다시 치과를 두어 번은 방문해야 한다. 

통증이라는 실제적인 문제보다 치과라는 이름이 안겨주는 추상적인 고통이 더 큰 문제인지도 모른다. 신경 치료할 때 예측 못 하게 시큰하는 두려움은 완전히 극복하기 어렵지만, 치과의 공포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드릴링 소리는 거의 극복했다. 하지만 치과라는 이름에 축적된 통증과 공포는 시간이 지나면서 단단한 퇴적물처럼 기억 속에 자리잡았다. 


인간관계에서는 척지고 살다가도 50년쯤 지나면 화해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치과와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나의 경험이다. 이 점에서는 잘못 없는 치과와 나의 치과 주치의께 대단히 미안하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면 너무 슬프다. 노력은 열심히 했지만 올림픽 예선에서 떨어진 운동선수처럼...


낙천적인 성격은 간혹 뜻하지 않은 때 역량을 발휘하기도 한다. 나의 지론인 “세상에 좋은 일만 있는 경우도 없지만, 나쁜 일만 있는 경우도 없다.”를 떠올리며 치과 치료시 겪게 되는 고통을 견뎌내는 방법을 소개한다.


비약이 조금 있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든 치과에 가는 걸 기꺼워할 리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치과를 학교보다 더 자주 다녔다. 30세 이후로는 정규 교육하는 학교를 더 이상 다니지 않았지만 치과는 지금까지 쉼 없이 다니고 있다. 그럼에도 치과 가는 것은 늘 거북하고, 불편하고, 공포스럽고, 꺼려지며 피하고 싶다. 이때 나에게 위로가 되는 말이 있다. 내가 정리해 낸 말이다. 


치과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고통은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렇다. 이가 아프면 최대한 빨리 치과에 가라는 이야기다. 한번 아프기 시작한 치아는 절대 후진해서 좋은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무섭다고 치과 가기를 미루면 병과 고통만 키운다. 진통제는 치료약이 아니다. 순간의 공포를 참고 치과 문을 열라는 말이다.


이번에도 수술 날짜가 정해지고 나서는 술도 못 마시고, 여행도 못 가면서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치과 의자에 누운 순간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료나 수술 후 겪게 되는 불편함도 얼마 후면 ‘다 지나간다.’


내가 집에서 밥을 하고 난 후 이런 수술은 처음이다. 아내는 수술 후 나에게 부엌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주방부(免廚房符)’를 주었고,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자신이 직접 주방 일을 했다. 주방 일에서 벗어나니 아주 작은 해방감을 느꼈다. 하지만 만 이틀이 지나지 않아서  나 스스로 부엌일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 턱에 테이프를 붙여 고정하는 바람에 말을 하기 어려웠다. 이 상황을 아내는 아주 좋아했다. 내가 떠들지 못 하니까 집안이 너무 조용하고 평화롭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아내에게 기쁨을 주리라고는 예상 못 했다. 그 평화는 테이프를 떼 내면서 하루 만에 깨졌지만.

*사진 출처 : pixabay(대문 사진 포함)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떠들어댄 이유는 치과 질환으로 고생하는 ‘환우(患友)’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끝으로 어린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

요즘은 옛날과 달리 치아 관리를 철저하게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틀림없이 있다. 다른 건 다 잊어도 자녀들의 치아 관리만큼은 잊지 마시길 신신 당부드린다. 식사 후 이닦는 습관을 완전히 몸에 배도록 해주시길 바란다. 특히 잠자기 전에는 반드시 닦아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바쁘고 귀찮아도 3세~14세의 자녀들은 최소 6개월에 한 번씩은 치과에 나들이를 가야 한다. 더 자주 가도 좋다. 그러면 고통받을 일도 별로 없다. 세 살 적 치아 관리, 백세까지 간다.  


쓰고 보니 이제까지 6개월여 브런치에 쓴 글 가운데 가장 공익에 부합하는 소리 같다. 


*중국 경전의 오복은 상서(=서경)에 나온다. 그것은 수壽, 부귀富貴,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이다. / 한자가 많아서 괄호 안에 쓰지 않고 병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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