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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Aug 09. 2021

40년 째 미용실에서 머리 깎는 남자

미용실 vs 이발소

몇 개월 전 내가 전에 살던 동네에 Barber S□□□이 생겼다. 왜 상호를 영어로 표기했는지 모르겠는데, 우리말로 하면 바로 이발소다. 생소하고 의아했다. 이발소는 사양 산업을 넘어 거의 소멸 산업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얼마 전 지금 내가 사는 동네에도 바버 □이 생겼다. 두 이발소의 상호와 외관이 아주 유사한 것으로 보아 같은 업체거나 프랜차이즈 업체가 아닐까 생각된다. 궁금했다. 이발소 내부가 어떤지. 과연 옛날의 이발소 그림은 있는지. 면도칼을 가는 가죽 줄도 있는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운영을 하는지도 궁금했다.


아마도 나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는 남자들 1세대가 아닐까 한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은 지 40년이 넘었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이발소도 졸업했다. 고교 졸업 후부터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기 시작했다. 나름 이유가 있었다. 아주 길게 머리를 길렀기 때문이기도 했고, 파마를 시도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유니섹스 모드 같은 중성적 단어는 존재하지 않을 때였다. 단순하게 남자는 이러저러하고, 여자는 저러이러 해야 한다는 생각이 대종을 이룰 때였다. 그러자니 남자가 이발소에 가지 않고 미용실에 가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처음 두어 번은 어머니를 따라 갔다. 1970년대 말인 그때 미용실은 ‘현대화’되기 전이었다. 동네에서 아줌마 1인이 운영하는 자영업 형태의 미용실이 대부분이었다. 남성 고객 출현이 어색하기는 미용실 아줌마도 마찬가지였다.


군 복무를 하던 몇 년 동안은 다시 이발소에 다녔고, 제대와 함께 미용실에 복귀했다. 이때의 미용실은 과거와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기업형, 프랜차이즈 형 미용실이 빠른 속도로 생겨났다.


이발소의 상징이다. 요즘은 보기 힘들어졌다.


1980년대 후반 여동생을 따라 가본 여대 앞 미용실은 동네 미용실과 완전히 달랐다. 거울 앞에 줄지어 늘어선 의자 수가 크게 차이가 났고, 일하는 종업원 수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드문드문 남자 직원도 눈에 띄었다. 이발소가 미용실에 밀리면서 빠른 속도로 쇠퇴 일로에 접어든 것이 이 무렵이 아닌가 싶다.


첫 번째 직장 시절인 15년 동안 나는 회사 부근의 여러 미용실을 다녔다. 꽤 오래 다닌 곳으로 1990년대 말 생긴 블O클럽이라는 미용실이 있었다. 남성 전문을 표방했고, 요금이 저렴했다. 한동안 다녔는데, 나중에는 갈 때마다 일하는 직원이 바뀌어서 짜증 끝에 발을 끊었다. 그리고 다시 회사 앞의 ‘1인 미용실’을 한동안 다녔다.


회사를 그만두고 난 후에는 동네 미용실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기억나는 미용실을 열거하면 대략 이렇다. 모O 헤어, 박O 미장, 상호 불명(음식점으로 바뀐 2층 미용실), 히O모, 상호 불명(개 키우는 자매가 운영), 최O을 헤어드레서, 이름 불명(상호에 365가 들어갔었다),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렇지 이 외에도 두 세 곳은 더 될 것이다.


이렇게 여러 미용실을 전전한 이유는 미용사가 자주 바뀌었기 때문이다. 요즘 세대는 미용사라는 단어를 모를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대부분 헤어 디자이너라고 하거나 ‘선생님’이라고도 하니까 말이다. 나도 시류를 좇아 여기서는 헤어 디자이너(이하 ‘헤디’로 약칭함)라고 해야겠다.


전직(轉職)이 쉬워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프랜차이즈 업체나 조금 큰 규모의 미용실 헤디들은 이직이 잦았다. 나를 담당하던 헤디가 그만 두면 그 미용실에 대한 호감이 줄어들어 미용실을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예약 시간을 지키지 않아서 그만 둔 경우도 두어 번은 됐다. 예약을 받아놓고도 20~30분씩 기다리게 하는 행태를 나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요즘은 전에 비해 예약 시간을 잘 지키는 편이라 내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지금 다니는 미용실에 와서야 나는 정주(定住)하게 되었다. 미용실 노마드(Nomad)처럼 10년 가까이를 보내고 유랑 생활에 지친 나는 결국 아내가 다니는 미용실을 따라 가게 되었다. 일전에 한번 와본 적이 있지만, 다른 곳보다 비용이 비싸서 발길을 끊었던 곳이다.


머리 깎는 솜씨도 그렇지만, 같은 디자이너가 무려 5년씩이나 바뀌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예약 시간을 잘 지키는 것에도 가산점을 주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내의 계정에 속해 있었으나, 독립해서 내 독자 계정을 만들었다.(*미용실에서는 흔히 고객별로 예치금 계정을 만들어서 관리한다.) 그리고 얼마 전 세 번째 예치금을 넣었다.


처음에는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영양가 없이 스트레스를 받기 싫어서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은퇴 백수가 되고 나서 생각을 바꿨다. 조금 비싼 미용실 비용을 백수인 나에게 허(許)하는 유일한 사치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요금을 올리지 않아서 지금은 다른 곳보다 비싸지도 않다.


이제 내가 미용실을 떠나 다시 이발소로 회귀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다 사라진 줄 알았던 이발소가 새로 생겨난다. 세상 일이라는 게 돌고 돈다지만 이럴 수도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새로 생겨나는 바버 □들은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새로 생긴 이발소 앞의 메뉴판을 보니(영어로 Menu라고 써놓았다) 커트 비용이 3만5천원이다. 가격이 만만치 않다. 메뉴 내용을 보니 남성 전용답게 면도 관련 항목이 여럿 있다.


이발소가 권토중래 하려면 집 나간 집토끼 고객(남자 고객)에 더해, 산토끼 고객도 이발소로 끌어들이는  디지털 시대의 신사고(新思考)를 퍼뜨려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남자가 처음 미용실을 출입할 때도 비슷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한번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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