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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Feb 18. 2021

집착과 정밀 사이

TV 드라마를 보면 여성이 ‘밥을 할 줄 아느냐’고 묻고, 남성은 안다는 표시로 밥물을 재는 시늉을 한다. 손바닥을 밥솥에 넣어, 밥물이 손등에 찰랑거릴 정도면 대충 합격점이다. 참으로 대충이다. 솥의 종류에 따라, 솥의 크기에 따라 밥이 필요로 하는 물의 양이 다를 텐데, 냄비밥이든 솥밥이든 그런 식이다. 하기야 이제는 거의 모두가 전기 압력솥을 사용하니까 손바닥을 쓸 일도 없어졌다. 


전기 압력 밥솥을 사용하면서 물의 양을 테스트해보았다. 솥에 표시된 눈금보다 조금 높게 그러니까 물의 양을 조금 더 많이 잡았다. 밥이 만들어진 결과를 보았더니 별 문제없었다. 그 비결은 아마도 압력솥이라는 점에 있는 듯했다. 특히 압력에 있는 듯했다. 압력솥의 작동원리까지야 내가 모르니까, 문제없다는 것만 확인하면 된다.


떡국을 끓일 때 나는 한동안 내 주먹을 양을 재는 기준으로 삼았다. 2인분의 떡국을 끓이기 위해 나는 네 움큼의 떡을 집어서 떡국을 만들었다. 그렇게 막연하게 하다 보니 의문이 생겼다. 내 손이 정확해서 떡국 양에 별 문제가 없는 것인지, 내 위(胃)가 정밀하지 않아서 대충 어느 정도의 양이 들어가면 포만감을 느끼는 것인지. 그러다가 떡을 물에 담가 불리는 그릇을 국 대접에서 머그컵으로 바꿨다. 2인분에 해당하는 한 끼 분량의 떡을 머그컵에 담았더니 공교롭게도 한 컵 가득 분량이 되었다. 떡의 양을 가늠하기가 쉬워졌다. 내친김에 무게를 달아보았다. 약 200g이었다. 시간이 있기에 떡의 개수를 세어보았다. 세 번에 걸쳐 세어보니 평균 마흔 개 남짓했다. 이쯤 되면 집착인가.


가장 많이 팔리는 햇반은 210g이다. 작은 햇반은 120g이고. 한동안 180g짜리가 있었는데, 요즘은 못 보겠다. 있는데 내가 가는 마트에서 안 들여놓는 건지도 모르겠다. 전에는 210g 햇반을 한 끼에 혼자 다 먹고도, 조금 모자란 듯했는데, 요즘은 매번 남는다. 나이 먹으면서 양이 줄었다. 햇반 그릇에, 남은 밥을 2인분용으로 꾹꾹 눌러 담아 냉동에 넣을 때의 무게는 약 250g이다. 


잔치국수나 비빔국수 등에 사용하는 마른 국수는 100g을 1인분으로 잡는다. 요즘 파는 중면이나 소면 포장 비닐에는 1인분을 표시하는 원이 있다. 그 원에 대보았는데, 몹시 부정확하고 불편하다. 그래서 저울로 단다. 복잡할 것도 없고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파스타도 100g 정도를 기준으로 삼았다. 몇 차례 테스트를 해봤는데, 그쯤이면 남기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았다. 젖은 국수(칼국수 용으로 파는 국수)는 약 140g을 1인분으로 잡았다. 이 칼국수는 100g으로는 한 끼 식사가 모자랐다. 수분의 함유량 때문인 듯하다. 라면과 짜파게티를 보니 각각 중량이 120g과 140g이다. 국물이 있는 음식은 조금 적고, 국물 없는 음식의 국수 무게는 조금 많아진다. 


TV의 한 요리 프로그램 진행자는 계량을 할 때 1회용 종이컵을 쓰라고 하는데, 사용해 보니  조금 불편하다. 그냥 머그컵을 사용하는 게 더 편했다. 머크컵의 용량은 크고 작은 종류에 차이가 약간 있지만 300~330ml다. 라면 물을 넣으려면 한 컵 반을 넣으면 된다. 


음식 개발자도 아닌데 이렇게 음식 재료의 양과 계량에 집착하는 것은 조리 속도를 빨리하고, 실수를 줄이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방에서 요리용 저울과 스톱워치를 사용한다. 스톱워치는 냉장고 문에 붙여놓고 쓰는데 아주 유용하다. 깜빡하고 태워먹거나 너무 졸아서 짜지는 일도 없어졌다. 이건 집착이 아니고, 정밀(精密)이라고 하자. 도량형 도구를 적절히 사용하는 슬기로운 주방 생활, 경험이 쌓이는 것이 조금씩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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