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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Oct 21. 2021

거실에서 운동화를 사다

홈쇼핑 첫 구매기

얼마 전, 홈쇼핑 채널을 관심있게 보기 시작한 후 머지않아 무언가를 사게 되리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지난 주말,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2년 가까이 신던 운동화가 낡아서 바닥이 미끄럽게 되었다. 운동량에 비하면 오래 신은 편이다. 새 운동화가 필요했다.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비교적 저렴한 광고 화면이 떴기에 클릭을 한번 했다. 그 다음부터 그 신발 광고는 수시로 내 PC 화면의 우측 하단에 등장했다. 한번 와 본 집이라고, 무상으로 드나드는 무뢰배 같았다. 내 PC에 들어오지 못 하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질 못하겠다.


멋모르고 신발 광고를 클릭하고 난 후 수시로 그 광고가 화면에 뜬다.


마음에 안 든 것도 안 든 것이지만, 무단 침입자를 응징하겠다는 마음으로 그 신발은 사지 않기로 했다. 이번에는 홈 쇼핑을 이용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의외로 남성 신발을 판매하는 시간은 많지 않은 듯하다. 남성 신발 중에서도 운동화는 더 만나기 힘들었다.


일요일 아침 아내가 TV를 보다가 컴퓨터로 가계부를 적고 있는 나를 불렀다. TV를 보았더니 운동화를 팔고 있었다. 아는 브랜드다. 디자인을 보니 그것도 마음에 든다. 특히 색상이 흰색인 것이 좋았다.


먼저 번 신던 흰색 운동화에 맞춰 흰색 운동용 양말을 세 켤레나 샀기 때문에 흰색 운동화가 사고 싶었다. 아내는 양말에 맞춰 운동화 색을 결정하는 게 조금 이상하다고 했다. 그래도 어차피 살 거라면 맞춰 사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인지, 지나치게 복잡한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홈쇼핑에서 기회가 왔다.


가격이 비싸지 않아서 최종적으로 사이즈만 결정하면 될 상황이다. 나는 아내에게 275mm를 주문하라고 했다. 아내는 지난 번 운동화 사이즈를 물었다. 둘 다 280mm라고 하면서 조금 크다고 대답했다. 아내는 275는 작을지 몰라서 안 된다고 한다. 그러더니 인터넷에서 리뷰를 확인한다. 볼이 조금 좁다는 의견이 있단다. 나는 아내 의견대로 280을 사라고 하면서, 크면 밑창을 하나 덧대지 하고 타협했다.


구매에 들어간 아내는 무슨 포인트 같은 게 있어서 조금 할인이 된다고 좋아한다. 무슨 포인트냐고 물었다. 자기도 잘 모른다고 한다. 아무튼 4천 몇 백 원이 할인이 된다고 한다. 이렇게 구매 과정은 끝이 났다.




일요일 오전 주문이 끝난 후 월요일에 나와 아내는 1박2일 여행을 떠났다. 문자로 배송 현황이 전달되는 모양이다. 월요일 오후에 배송될 것 같다고 한다. 그렇게 빨리 오냐고 했더니 자기도 정확한 건 모른단다.


화요일 오후 집으로 오면서 나는 신발이 궁금해졌다. 집에 도착하니 현관 문 앞에 택배 상자가 두 개 놓여있다. 하나는 내 운동화고, 다른 하나는 아내의 구두다. 아내는 내 운동화를 구입한 다음 자기도 하나 산다며 구두를 구입했다. 말릴 방도가 없는 상황이었다.


상자를 열려고 하는데 아내가 “언박싱~”한다. 언제부터 상자 열기가 언박싱이 된 건지 궁금했다. 커터(칼)로 테이프를 자르려는데 아내가 뒤집으라고 주문한다. 반품할지 모르니까 뒤집어서 상자 테이프를 가르라고 한다. 이게 무슨 뒤집기 초식인가. 고 최인호 선생의 소설 <지구인>에서 소매치기가 안창 따기 교육을 받던 대목이 떠올랐다.


겉의 포장용 박스를 언박싱하니 안에 신발 상자가 드러난다. 흰색 상자 뚜껑을 열었다. 넋 놓고 있는 버스 승객의 지갑처럼 운동화가 상자 안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아내가 신어보라고 재촉한다. 신어보니 꽉 맞는다. 275였으면 작을 뻔했다.


TV를 보다가 핸드폰 클릭을 몇 번만 하면 무엇이든 살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반품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비용은 누군가 부담을 하겠지.


아내의 공치사가 이어졌다. 그러니까 리뷰가 중요한 거란다. 그러면서 “안 작지?”하고 다시 확인한다. 아내는 신발 가게에서 신어보고 나서도 집에 와서는 크니 작으니 하는 내 습관을 아는 탓에 재차 확인하려고 한다. 나는 괜히 주눅이 들어 신발 뒤 끝에 손가락을 넣어보았다. 거의 여유가 없다. 그래도 작을 것 같지는 않다.


“괜찮아.” 내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아내가 묻는다. “이건 어때?” 아내가 자신의 구두를 신고 나에게 물어본다. 내가 신발 신는 것을 보며, 묻고 싶은 걸 오래 참았다.

“좋아.”

얼마 전에 산 옷이 크다며 두 벌이나 반품했던 아내는 이번 신발은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나의 짧은 대답에도 별 말 없이 “잘 산 것 같다”고 자화자찬한다.


아내와 달리 나는 내 신발이 혹시나 작지는 않을까 다시 걱정을 하며, 브런치의 내 필명을 떠올렸다. "신  데  렐  로."  그렇다면 내가 홈쇼핑으로 산 신발이 유리 운동화!!??


*글을 다 쓰고 났는데 스니커즈 광고가 화면에 또 뜬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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