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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Dec 13. 2021

끊어야 산다

협심증 환자가 애연가들에게 전하는 연말 선물

나는 심장병 환자다. 


내가 심장병 환자임을 인지한 것은 20년 가까이나 되었다. 고혈압과 고지혈증으로 시작해서 부정맥을 거쳐 협심증으로 나아갔다. 그 동안 여러 가지 검사와 약 처방, 응급실을 통한 입원 등 다양한 병 이력을 쌓았다. 


5년 전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을 때 혈관 조영술을 했다. 혈관의 막힌 부위를 정확히 파악하려는 것이었다. 다행히(혈관 조영술까지 나간 사람이 무얼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지...) 가장 굵은 혈관이 막히지는 않아서 스텐트(stent) 시술을 당장 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때 퇴원과 함께 30여 년 간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완전히 끊었다. 끊을 수밖에 없었다. 돌로 만든 집채 만한 팽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통증과 당장 죽을 듯한 공포를 경험하고도 담배를 계속 피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지난 주 심장병 진료의 연례 검사인 운동부하 검사를 했다. 이 검사는 심장에 인위적으로 부담을 주어서 심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고혈압, 협심증, 부정맥 등 심혈관계 질환 환자들에게는 ‘친숙한’ 검사다. 


검사 방법은 간단하다. 가슴에 검사용 전극스티커(정확한 명칭은 잘 모르겠다)를 붙이고 팔에는 혈압 측정계를 두른 후 트래드밀(tread mill) 위를 달리면 된다. 총 네 단계로 이루어지는데, 각 단계별로 3분 정도를 걷거나 뛰게 된다. 첫 단계는 아주 쉽지만 2단계가 되면 조금 어려워진다. 경사가 높아지면서 속도가 빨라진다. 3단계가 되면 경사가 더 높아지고, 속도는 더 빨라진다. 환자가 아닌 사람도 부담을 느낄 정도가 된다. 마지막 4단계는 경사가 아주 가파르고 속도는 상당히 빠르다.


이번 검사에서는 마지막 4단계 중간까지 뛰었다. 이때 속으로 ‘뛰어야 산다, 뛰어야 산다.’하고 주문을 외웠다. 결과는 1년 전과 비슷했다. 2년 전에는 4단계 끝까지 뛰어서 주치의로부터 칭찬을 들었다. 이번에 4단계를 다 마치지 못 한 이유 중에는 마스크를 쓰고 검사를 했다는 점도 있을 것 같다. 


4단계를 다 못했지만 나쁜 성적은 아니다. 이번에도 진료시에 주치의로부터 잘 한 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10여 년 전 이 검사를 처음 했을 때는 3단계도 마치지 못 했다. 그러고도 무절제하게 막 살았다. 여기서 무절제란 다름 아니라, 술, 담배, 운동 안 하는 것을 가리킨다. 


직장생활 하는 동안 술은 안 마시는 날보다 마시는 날이 훨씬 많았다. 대리운전 비용을 엄청나게 써댔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담배도 많이 피웠다. 재수할 때부터 시작해서 30여년 동안 하루 평균 한 갑 이상을 피웠다. 술 마신 날은 두 갑 이상, 어떤 때는 세 갑도 피운 것 같다. 운동, 당연히 안 했다. 아니 술 마시느라 시간이 없어서 못 했다. 해외 여행을 두 번 다녀온 후에는 여행을 앞두고 한 달 가량 걷기 운동을 했다. 체력이 달려서 여행을 다니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다보니, 나는 운동부하 검사를 하는 환자들 사이에서 젊은 축에 속하는 악성 환자가 되었다. 




연말이다. 한 해를 돌아볼 때다. 새해에 실행할 새로운 결심도 준비할 때다. 이 글은 그 결심을 하는 사람들 중 특정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쓰는 글이다.


만약 담배를 피우고 있다면 당장 끊기를 권한다. 대단히 어려운 일인 줄 누구보다 잘 안다. 나는 한때 골초 소리를 듣던 사람이었다. 몇 번의 짧은 금연 성공 시간도 있었지만 결국 다시 담배를 피웠다. 심장병 환자가 되고서도, 50 중반이 넘도록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이제 금연한 지 만 5년이 되었다. 아직도 금연에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담배는 그렇게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언제 다시 피우게 될지 나도 모른다. 


나보다 나이 많은 지인들 가운데 담배를 사랑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한 사람은 말 그대로 체인 스모커(chain smoker)였다. 피우던 담배가 다 타들어가면 그 담뱃불로 새 담배에 불을 붙여서 계속 피웠다. 두 시간에 한 갑을 피우는 걸 보았다. 하루에 네 갑을 피운다고 했다.


다른 체인 스모커. 늘 담배를 물고 있었다. 하루에 세 갑 넘게 피운다고 했다. 사무실 서랍과 집에는 담배가 보루로 쟁여져 있었다. 또 다른 애연가도 하루에 세 갑 이상 담배를 피웠다. 그 사람은 시가도 즐겨 피웠다. 


세 사람 모두 고인이 되었다. 한 명은 칠십 중반에, 두 명은 육십 대에 유명을 달리했다. 요즘 90대까지 생존하는 남성들도 많은 것에 비하면 말 그대로 단명이다. 물론 담배만이 단명의 원인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담배의 영향이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다. 흡연의 좋은 점도 있긴 하겠으나, 이 상황에서 그런 칭찬은 의미가 없으리라.

애연가 중에는 이 글을 읽으면서 배신자의 헛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이 글을 보고 한 명이라도 담배를 끊는 사람이 생긴다면 나는 올 한 해 좋은 일을 충분히 한 셈이다.  


나는 담배를 끊고 3년 정도까지 담배 피우는 꿈을 꾸었다. 상황과 이유는 모르겠지만 담배를 피우거나, 담배를 피우고 싶어 안달을 하는 꿈을 꾸었다. 3년쯤 지났더니 그런 꿈은 사라졌다. 그런데 지금 담배 이야기를 계속 했더니 또 담배가 피우고 싶다. 담배는 그런 것이다.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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