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캄캄해도 사랑이었다

'폭싹 속았수다' 속 어린 왕자, 첫사랑을 부르다_손빈아의 <연모>

by 유투리

연모가 불러낸 첫사랑의 기억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속 금명이와 영범의 이별 장면.
“정말 안 되는 거냐”고 떼를 쓰며 아이처럼 우는 영범이와,

이미 결심은 했지만 차마 모질게 대하지 못하고 그의 눈물을 닦아주는 금명이.

첫 연애를 길고 진하게 겪은 두 사람의 마지막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첫사랑, 첫이별을 떠올리게 했다.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11회 중

온 세상을 지워버린 듯 둘만의 세상에서 넘치게 행복하다가, 곧 절절하게 아파지는 사랑.

세월이 흘러 성숙한 어른이 된 영범이가 그 시절의 자신을 돌아본다면 그 모습이 바로 이렇지 않았을까.

미스터트롯3에서 손빈아가 부른 <연모>

이도 저도 못하면서 사랑했었다
앞이 캄캄해서 안 보이더라
당신과 나 약속이나 한 듯
돌아가는 길을 지웠다

첫 가사부터 첫사랑의 서툴고 치열한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감정은 앞서고 마음은 서툴러, 때로는 상대를 아프게 하고 결국 길을 잃는 사랑.

불완전한 첫사랑이야말로 삶을 가장 깊게 물들이는 문장이 된다.



손빈아의 무대, 진심을 토하다

세 번의 도전 끝에 또 다시 선 무대.

손빈아는 미스터트롯의 대표적인 ‘삼수생’이었다.

이번 무대는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벼랑 끝 고백처럼 절실했다.

정갈하게 선 그의 자세와 듬직한 체구, 깊이 있는 울림은 이미 눈길을 끌었지만,

<연모>의 하이라이트 구간에서 객석은 단숨에 숨죽었다.

천번이고 만번이고
내 마음 물어보지만
당신을 떠나서는 나도 없다고
뜨거운 가슴이 말하네.
출처: TVCHOSUN MUSIC 유튜브

절제된 호흡과 흔들림 없는 안정감, 무대를 압도하는 파워와 노련한 매너까지 —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그 순간, 무대 위에는 가수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 서 있었다.

결과는 경연의 역사에 남았다.
마스터 점수 1500점 만점.
‘미스트롯’부터 ‘미스터트롯3’까지 총 여섯 개 시리즈가 방송되는 동안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기록이었다.
손빈아가 처음으로 쓴 역사,
삼수 끝에 쏟아낸 절실한 무대는 한국 트롯 경연사의 한 장면으로 새겨졌다.

출처: TVCHOSUN MUSIC 유튜브

뒤늦게 빛난 첫사랑의 노래

<연모>는 의외로 최근 곡이다.

2014년, 김병걸 작사·이동훈 작곡으로 세상에 나왔다.
애초엔 조항조를 겨냥해 쓰였지만 여러 가수에게 외면받다가,
30년 만에 돌아온 박우철의 손에 들어가며 뜻깊은 무대가 되었다.

하지만 노래는 한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전환점은 2020년 TV조선 <미스터트롯의 맛>이었다.
임영웅이 이 곡을 담담하게 불러내며
회고하듯 담담하게 차분히 풀어낸 무대가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그 영상은 유튜브에서 1,300만 뷰를 넘기며
이 곡을 다시 조명하게 만들었다.

이후 ‘불타는 트롯맨’의 한강, 그리고 미스터트롯3의 손빈아까지 이어지며
세대를 잇는 새로운 명곡으로 자리 잡았다.
뒤늦게 피어난 한 곡이,
이제는 여러 가수들의 목소리 속에서 또 다른 생명을 얻고 있다.


무대 위의 어린 왕자

손빈아는 명곡의 생명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후반부에서 음악이 전조되며 고조될 때, 손빈아는 토해내듯 “뜨거운 가슴이 말하네”를 절규했다.
트롯을 넘어선 순간이었다.


오페라의 한 장면처럼 우아했고, 연극처럼 감정을 눈앞에서 전해주는 듯했다.
관객석은 숨죽였고, 무대는 전율로 가득 찼다.

출처: TVCHOSUN MUSIC 유튜브

그 순간 오래된 기억이 겹쳐졌다.
대학 시절, 전부였던 사람과 헤어지고 며칠을 앓아누웠던 적이 있다.
곁에서 엄마는 말했다.
“다시는 이렇게 슬프지도, 이렇게 뜨겁지도 않을 거다.
이런 사랑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테니 다 괜찮다.”
그 말은 맞았다.
다시는 오지 않을 뜨거움과 슬픔, 그 모든 것이 첫사랑이었다.

그리고 다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장면이 떠올랐다.
금명은 영범과의 이별을 두고
“둘만 있던 작은 별에서 어린왕자가 떠나는 일 같았다”고 표현했다.
손빈아의 <연모>는 그 어린왕자의 뒷모습을 닮아 더욱 애틋했다.


잊고 지낸 사랑의 기억을 잠시 꺼낸 듯,
손빈아의 무대에 환호하며 눈을 반짝이던 중년의 관객들은
금명이와 영범이가 된 듯 했다. 그 순간 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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