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에게 소개하고픈 코리안바이브 _ 조영남의 <화개장터>
지리산 자락,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이른 아침.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쪽은 전라도, 저쪽은 경상도다.
장터 어귀에는 갓 삶아낸 국밥 김이 모락모락,
좌판에는 봄나물과 곶감이 수북하고,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상인 옆에서는 흥정 소리가 오락가락 섞인다.
억양은 달라도 장터의 손짓과 웃음은 같다.
어제까지 투덜대던 이웃이 오늘은 파 한 단 더 얹어주는 곳,
그곳이 바로 ‘화개장터’다.
요즘도 선거철이면 지도는 여전히 동서로 쫙 갈라진다.
21대 대선 지도도 역시나 좌우가 선명한 두 색깔이다.
싸이의 노래 ‘환희’에도 “동서로 갈라, 여야로 갈라”라는 가사가 있지 않은가.
반세기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고질적인 지역감정.
그 한가운데,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의 경계에서
“난 잘 모르겠는디, 우리 사이좋게 지내요잉” 하듯 노래 한 자락이 펼쳐진다.
<화개장터>의 가사는 단순하다 못해 귀엽다.
구경 한번 와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 장터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화개장터~
한 번 들으면 멜로디보다 가사가 먼저 귀에 들어온다.
논리적 설득도, 화려한 수사도 없다.
그저 “와서 같이 지내자”는 말뿐.
이 단순함이 오히려 마음의 벽을 무너뜨린다.
노래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더 흥미롭다.
1988년, 젊은 시절의 김한길과 조영남은 경향신문 한 귀퉁이에서 한 시민 인터뷰를 발견했다.
“먹고 살아가는디 전라도 경상도가 무신 상관인가요.
우리 생활과 관계없는 사람들이 지역색을 들먹거린디 화가 치민다요!”
평소 지역감정에 안타까움을 느끼던 두 청년은,
이 말을 읽고 단번에 가사를 구상했다.
경계에서 장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정치가 만든 벽과 상관없이 흥정을 하고 웃음을 나누는 사람들.
그 모습이 ‘화개장터’라는 짧고 직관적인 노랫말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현실을 모르는 바보 같지만, 때론 이런 바보 같은 순수함이
갈등을 풀어내는 가장 강력한 힘일지 모른다.
명곡은 세월이 흘러도 사랑받는다.
리메이크가 되고, 트렌디한 옷으로 갈아입고 오래 오래 사랑받는다.
화개장터는 리메이크 되기 어려운 곡이다.
화개장터의 화룡점정이자 대체불가한 이가 조영남이라서다.
그는 호감형 연예인과는 거리가 멀다.
자유분방하다 못해 경솔해 보이는 발언, 막말과 진솔함을 오가는 태도,
나이값 못한다는 지적까지…
그래서 “좋아한다”는 사람과 “도저히 못 보겠다”는 사람이 극명하게 갈린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대중의 관심 한가운데 있다.
이게 바로 스타성이다.
열린음악회에서 그가 <화개장터>를 부르던 날,
관객석 한쪽에 외국인 남성이 있었다.
무대가 시작되자 심드렁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던 그는
젊은 K팝 가수도 아니고, 나이 든 아저씨가
중얼거리듯 노래하는 모습이 그저 낯설었던 것 같다.
그런데 1절이 끝나자, 그 외국인은 미소를 띠며 박수를 신명나게 친다.
노래와 무대가 사람 마음을 바꿔버린 순간이었다.
조영남은 밀짚모자에 다리 한쪽을 걷어부치고,
막걸리 한 잔 기울이며 장터를 헤매는 상인의 모습 그대로다.
그러면서도 정확한 음정, 또렷한 가사 전달, 능청스러운 감정 표현까지 놓치지 않는다.
그가 부르는 <화개장터>는 단순히 흥겨운 장터의 풍경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복잡한 장터의 한 단면이 된다.
조영남의 <화개장터>는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노래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외계인에게 대한민국을 소개한다면?”이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곡을 10곡 안에 넣을 것이다.
한국적 해학과 여유의 바이브가 가득한 곡이라서다.
사람을 웃게 하고 마음을 탁, 풀어지게 하는 힘이 있어서.
촌스럽고 구수한 말투로,
“난 잘 모르겠고, 우리 사이좋게 지내요잉” 하고 건네는 한마디.
그 한마디에 담긴 것은 장터의 인심,
그리고 경계선에 서 본 사람만이 아는 귀한 여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