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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제 Jul 09. 2021

WYF의 의미

Wasting Youth Friends




자, 제목을 보는 이들은 흠칫할 수도 있겠다. WTF도 아니고 WYF라니. 비슷한 말인가 싶을 테지만 아니다. 물론 욕 같은 상황이긴 하다. 바로 '청춘을 낭비 중인 친구'라는 뜻이니까. 내 친구 J양과 나는 열렬히 청춘을 낭비 중이다. 사실 주변에 이런 친구들이 좀 있긴 하지만 유독 우리 둘은 그 사실을 못 견뎌하고 있다. 내가 말하는 청춘의 의미는 연애다. 


우리 둘 다 연애 휴식기 상태다. 아니, 아마 빙하기라는 말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다. 멸종한 공룡들처럼 우리의 설렘과 애인들은 자취를 감췄다. 스물넷인 나는 지금이 꼭 연애를 하기 좋은 나이 때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단순하다. 20대 초반보다는 새끼손톱만큼의 경력을 더 쌓은 경력직이니까 더 성숙하고 행복한 연애가 가능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무엇보다 세월이 지나 반추했을 때 곱씹기 좋은 젊고 예쁜 청춘의 시간이라는 이유가 크다. 이럴 때 연애하지 못하는 건 너무 우울하고 불행하다. 


나는 약 일 년 전에 이별을 경험했고 J양 역시 비슷한 시기에 결별했다. 겉이 번지르르한 개살구들에게 당한 우리 둘은 당시에 술을 마시며, 누구를 믿고 만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론하다가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냥 아무나 만나도 똑같다는 결론을 내곤 했다. 그때는 발칙하게도 '앞으로 연애를 안 하겠다'라는 망언도 뱉었는데, 가능하다면 당장이라도 그때로 돌아가 나무 잡고 침을 세 번 뱉으라 시키고 싶었다. 사실 이런 괴랄한 생각은 혼자 간직하고 있었다. 왠지 주변에 외롭다고 얘기하는 건 자존심도 상하고, 정말 또 '아무나' 만나게 될 것 같아서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광화문에서 근로 중인 나를 J양이 찾아왔다. 신설동에 살고 있는 그는 나랑 점심 한 끼를 하기 위해 기꺼이 을지로까지 행차해주었다. 둘은 얼굴을 보고 1년 만에 봐서 너무 오랜만이라며 안부와 회포를 3분 정도 풀고 야무지게 음식을 주문했다. 


"진짜 오랜만이다. 서지야. 잘 지냈어?" 

"나야 똑같지. 맨날 알바 가고. 너는? 인턴 기간은 끝난 거야?" 


1년 동안 못 봤다고 해도 어제 만났던 사이처럼 어색함이 없었다. 대강 근황 토크가 끝나자 J양은 대뜸 물었다. 


"너 남자 친구 없어?" 

"어 없지. 너는? 있어?" 

"아니 나도 없어." 말이 끝나고 우리 둘은 깔깔 웃어댔다. 


"왜 우리는 연애 못하냐?" 

"너 뭐 인턴 회사에서 아무것도 없었어? 왜? 거기 남자 많잖아." 

"다 결혼했든가, 5년 만난 애인 있던가 그러던데? 나 아무것도 없어 진짜." 순간 웃기기도 하지만 어이가 없기도 했다. 


"아니, 우리 지금 청춘인데 왜 연애 안 해? 진짜 우리 둘 청춘 낭비 중이야." 

"그니까. 개 웃기다. 우리 연애해야 돼. 좋은 사람 없어? 건실한 청년 있으면 소개해줘." 

"없어. 다 애인 있거나 너 스타일 아니야. 이게 무슨 일이냐 우리." 


신세한탄을 하기 시작하자 주문한 메뉴들이 나왔다. 둘은 예쁜 그릇에 담긴 신선한 포케를 먹으면서 한참이나 애인 만드는 법에 대해 떠들어댔고, 당연히 어떠한 성과도 없었다. 


정해진 수순으로 커피를 먹으러 가서는 서로의 이상형에 대해 PT를 펼쳤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꼭 소개팅을 주선하기로 약속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문득 나는 "내 생각에는 그 전 남자 친구들이 우리한테 저주를 건 것 같아. 아니면 이럴 수가 없어. 내 대학 동기들은 놀랍게도 나 빼고 다 연애 중이란 말이야." 했다. 


내 말을 듣고 미친 것 같다며 웃던 J양도 동감했다. 한참 그런 얘기를 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한 시간 반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사라졌다. 즐겁고 행복했다. 


사랑이 이런 거 아닌가 싶어서, "나는 너랑 이렇게 노는 게 행복하고 좋아. 내 생각엔 그냥 이 꼴 저 꼴 볼 거 없이 결혼하지 말고 그냥 같이 사는 게 좋겠어. 이게 삶의 진리 아닐까?" 했지만 J양은 약간 단호했다. "그래도 나는 남자랑 사귀고 싶어. 너랑은 뽀뽀하고 싶지 않은걸." 새초롬히 답한 그는 사무실로 복귀하는 나에게 커피를 사주며 당부했다. 


"우리 다음에 만날 때는 둘 중 한 명이라도 꼭 애인을 만들어오자." 

"그럼 못 만나는 거 아니지." 

"아 그런가. 그럼 그냥 술이나 먹자. 신설동 놀러 와."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물론 연애를 안 하는 게 청춘을 낭비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건 우리 둘 다 알고 있다. 그런데 그냥, 투정 부리는 거다. 연애하고 싶어서, 같이 좋은 거 보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행복해할 제일 친한 단짝이 필요해서 그런다. 인연은 예기치 못하게 온다는데, 우리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 오긴 오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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