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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제 Jul 22. 2021

이 노래 들으면 꼭 헤어지더라

사랑이 잘 - 아이유 (With 오혁)



누군가 내 인생 노래를 꼽아보라 한다면, 나는 어떤 곡을 고를까. 수많은 곡들이 순간 머리를 스친다. 아니, 그런데 사람들은 인생 노래를 정해두고 사는 건가? 매번 달라지지 않나? 봄엔 달큼한 노래들, 여름은 청량한 댄스곡, 가을 겨울은 먹먹한 발라드가 제격이니까 말이다. 그 와중에 나는 좋아하는 아이돌이 있어서 그들의 곡이 아닌 다른 곡들은 들을 시도조차 잘 안 하는 편이다. 


이런 나에게 인생 노래라니. 사랑해 마지않는 내 아이돌들의 곡 중에서 꼽아볼까 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많다. 모든 순간, 매 컴백마다 정점이라고 생각하는 진성 팬인 나에게 가혹한 일이다. 한참 고민해보다 음악 어플에 들어갔다. 대체 요즘 내가 어떤 노래를 듣고 다니나 싶어서. 역시 대부분이 내가 사랑하는 그들의 노래들이다. 하지만 중간중간 나의 변덕을 비껴간 노래들이 눈에 띈다. 그중에서도, 몇 번의 플레이리스트 숙청에서도 살아남은 한 곡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유의 '사랑이 잘'이라는 노래다. 


오혁과 함께 부른 노래로, 아마 내 새내기 시절에 나왔던 것 같다. 4월 즈음, 온갖 꽃과 사랑이 난무하는 곡 중에서 담담히 마주한 이별을 노래하는 이 곡은, 오랜 시간 내 사랑을 받은 이유가 있다. 이제는 징크스처럼 여겨지기도 하는데, 나는 남자 친구랑 헤어지기 직전에 꼭 이 노래를 듣는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가사가 좋아서, 둘의 음색이 기가 막혀서였지만 이제는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17년 4월에 나는 동갑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는 다른 학교 학생이었고, 내 동기의 고향 친구였다. 으레 그렇듯이 소개팅으로 만난 우리는 세 번째 만났을 때 연인이 되었다. 내가 참 좋아했던 것 같다. 처음에 소개해 달라고 조른 것도 나였으니까. 오죽하면 그 동기가 술 마시다 대뜸 전화를 걸어 소개팅을 성사시켜줬다. 그 애도 내가 싫은 건 아닌 것 같았지만, 둘의 애정의 크기가 달랐다. 


그가 웃고 있는 사진에 반한 나는 이미 애정을 빠르게 쌓아갔고, 그는 당연히 내 속도와는 차이가 났다. 2인 3각에서 한쪽만 의욕이 넘치면 꼭 넘어지는 것처럼 내 스무 살 첫 연애는 처참히 패했다. 연락이 점점 뜸해졌고, 당일에 약속을 취소하는 날이 많아졌다. 드라마에서 보면 남자 주인공이 이러다가 나중에 꼭 후회를 하던데 그건 완벽히 드라마다. 


나는 그렇게 그에게 흐려지면서, 몇 시간이고 울리지 않는 아이폰을 바라보면서 이 노래를 들었다. 가사가 정말 내 마음이었다. '사랑이 잘 안돼, 떠올려봐도, 관심도 없잖아 친구야 뭐야' 등의 가사가 턱턱 걸렸다. 사실 창피한 일이지만 혼자 버스에서 줄 이어폰으로 이 노래 듣다가 운 적도 있다. 돌아보면 웃기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스무 살의 연애가 끝났다. 


그 뒤로 만난 남자 친구는 훨씬 나은 수준이었고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헤어질 때는 비슷한 수순이었다. 두 배, 아니 제곱으로 힘들었다. 그럼 그렇게 세상 다 줄 것처럼 굴지나 말던가. 그다음도, 그 그다음에도 남자들은 마지막엔 비슷한 수순으로 나를 지워냈고, 내가 그에게서 흐려지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항상 이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애써 씩씩하게 생각하려 했다. '내가 얘 없이 2n을 살았는데, 고작 몇 개월 만났다고 앞으로 20년 못살겠냐?' 하며 말이다. 그러면 꼭, 괜찮아지는 것도 같았다. 아이유처럼 예쁜 언니도 이렇게 무미건조한 이별을 말하는데, 나라고 뭐 다를까 싶어졌다. 


이제는 헤어지기 전 '사랑이 잘'을 들어도 울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또 무모한 자신이겠지. 노래도, 영화도, 책도 한 번 꽂히면 주야장천 그것만 보는 내가, 사람이라고 안 그럴 리가 없다. 누군가에게 다시 빠지게 된다면, 그러다 언젠가 이별이 가까워졌을 때 인생 노래인 이 곡을 듣게 되면, 이번에는 에어팟을 끼고 버스에서 뚝뚝 울겠지. 안 봐도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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