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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제 Dec 15. 2020

잔혹동화를 좋아하세요?

어린이 영화인 척하는 제대로 된 어른 영화




나는 팀 버튼 감독의 영화를 사랑한다. 동화인 척하는, 잔인하고 냉철하다가도 따뜻함이 있는, 반전과 충격으로 점철된 그의 작품들 말이다. 입덕의 시작은 바로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이다. 고3 시절 친구와 화끈하게 조퇴를 내고 보러 간 영화다. 당시 딱히 볼 것도 없고 시간도 맞아서 얼떨결에 보게 되었다. 이때까지는 팀 버튼 감독이 누군지도 모르고,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도 몰랐다. 


영화가 시작되고, 충격과 긴장감이 한바탕 몰아치고, 나는 영화에 완벽히 반했다. 배우들의 연기, 푸르고 흐린 영상 분위기, 독특한 설정과 스토리, 섬뜩한 괴물 캐릭터까지 정말 내 취향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이게 어린이들을 위한 영환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람의 눈알을 파내고, 그걸 먹고, 투명 괴물이 사람을 죽이는, 생각보다 그로테스크한 장면은 물론, 전체적인 설정과 복선도 좀 이해하기 어려운 편이기 때문이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스틸컷


이러나저러나 19살의 나는 매우 흥미롭게 영화를 봤고 집에 오자마자 검색창에 영화를 검색했다. 여러 해석들을 읽어내리며 나는 확신했다. 감독은 천재라고.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정말 미친 상상력이다. 디즈니와 픽사를 사랑하는 나지만 그와 상반된, 조금은 잔인하고 잔혹한 동화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느꼈다. 


손에 닿는 것은 모든지 불을 붙이는 능력을 가져 가죽 장갑을 항상 끼고 다니는 아이, 공기보다 가벼워 납 신발을 신고 살아야 하는 아이, 독특한 쌍둥이, 투명 인간, 입 안에서 계속해서 벌이 나오는 아이, 머리 뒤에 입이 달린 아이, 미래를 꿈으로 볼 수 있는 아이 등을 돌보는 새로 변하는 원장 선생님까지. 글로만 읽으면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장면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


넘실거리는 여운과 감명은 며칠간 계속됐고, 그 주 주말에 나는 재관을 위해 다시 영화관을 찾았다. 그렇게 상영 중에 두 번 보고, vod로 나왔을 때는 억지로 엄마를 옆에 앉히고 추천하며 또 보고, 영화 채널에서 방영하면 또 봤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매일 같이 들어가는 넷플릭스에서 이 작품을 마주했다. 질릴 정도로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어제 또 봤다. 12세라고 얕잡아 본 나를 매년 혼내주는 영화다.


해리포터와 같은 판타지 영화 팬이라면 좋아할 것이라 확신한다. 판타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빠른 호흡과 충격의 연속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보게 될 것이다. 너무 진지하거나 슬프고 어려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더없는 추천작이다. 하하호호 행복하고 예쁜 동화 속 세상을 경멸하는 사람들에게도 무조건 추천이다. 으스스하고 섬찟한 이들의 세계에 한 번 발을 들이면 나처럼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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