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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제 Dec 12. 2020

어른들은 왜 첫눈을 안 좋아할까.

첫눈 기념 파티하는 20대 어른이




추운 걸 극도로 싫어해서 여름을 더 사랑하는 나지만, 겨울에도 사랑할 거리가 있다. 붕어빵과 같은 겨울 간식, 연말 분위기, 크리스마스, 캐럴, 첫눈 따위 것들이다. 이번 겨울은 코로나에 기세가 밀려서인지 추위도 한 발짝 늦게 찾아왔다. 그만큼 첫눈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런데 내일 첫눈이 내린단다.


사실 이전 새벽에도 한 번 내렸다고 했고, 어디 산 언저리에서는 이미 눈이 날린 지 오래라고 한다. 하지만 내 마음속 첫눈은 아직 내리지 않았다. 내가 사는 곳은 매년 폭설로 고생하는 편이라 사실 첫눈이 아니면 눈 소식을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는데, 첫눈만큼은 우리 집 강아지보다 더욱 기다린다.


그 느낌이 좋다. 적당히 어두운 하늘과 평상시보다 포근한 온도, 조용한 분위기까지. 문득 창문을 열면 눈이 솔솔 내리고 있을 것만 같은 그 기분.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따뜻한 커피나 핫초코와 함께면 금상첨화다. 가만히 내리는 눈을 쳐다보고 있자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어찌저찌 지나간 봄과, 더위를 견뎌내던 여름, 지금 아님 입지 못하는 트렌치코트를 정신없이 입으며 보낸 가을, 돌이켜보면 시간은 꼭 나만 빼고 흐르는 것 같다. 이렇게 잠시 감성에 젖었다가, 내리는 눈을 보면 다시 들뜨기 시작한다. 오르락내리락, 일 년에 하루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괜히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린다. 지금 눈 오는 거 알고 있냐, 오늘 저녁에 뭐하냐, 첫눈도 오는데 소주나 한 잔 할까 하며 들뜨는 감정을 약속으로 이어간다. 그렇게 친구들과 만나서 벌써 첫눈이 왔다며, 한 해가 어떻게 다 갔는지도 모르겠다고 한탄하고, 꽤 취해서는 낄낄거리다 택시를 타고 귀가한다. 하지만 이번 연도는 이런 첫눈 감성을 나누기 어려워졌다. 아쉬운 대로 집에서 엄마랑 나누어야겠다. 사실 운전을 하는 우리 엄마는 눈 오는 걸 너무 싫어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딸내미가 유난이라 생각해도 엄마가 참아줬으면 좋겠다.


주변 파스타 가게에 샹그리아 한 병을 예약했다. 치즈 플레이트 함께 포장해올 생각이다. 예쁜 술과 음식, 첫눈과 복슬복슬한 강아지, 아무 얘기나 해도 즐거운 엄마까지. 비록 왁자지껄하게 첫눈을 기념하지는 못하겠지만 올해 첫눈도 오래 기억될 것이다. 아직 내리지 않았지만 이미 내린 것마냥 나는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부디 내일 꼭 눈이 내렸으면, 애매한 싸릿 눈이 아닌 온 세상 하얗게 내려서 불안하고 답답한 우리들 마음을 조용히 덮어줬으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어른들도 깜찍하게 첫눈을 기념해보는 것은 어떨까. 애도 아니고 주책이라는 타박을 받을 수 있지만, 솔직히 모두들 첫눈을 기다리고 설레는 것을 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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