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 둥지 증후군은 자녀들이 독립을 하는 시기에 부모가 느끼는 슬픔을 의미한다. 이러한 빈 둥지 증후군은 주 양육자의 역할을 맡는 여성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딸의 열여섯 번째 생일을 앞둔 주말이었다.
케이크는 어떤 걸로 살까?
먹고 싶은 거 있어?
어떻게 보내고 싶어?
선발 투수의 직구처럼 질문을 던졌다.
파바 치즈 케이크 작은 거면 되고,
회든 초밥이든 연어를 먹고 싶고,
좋아하는 야구팀 직관을 이틀 연속 가고 싶어요.
포수의 글러브 속으로 답변이 들어와 박혔다.
"엄마, 나 렌즈 끼는 것 좀 도와주세요."
이틀 연속 직관 중에 한 번은 이기겠지. 기대에 부푼 딸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난생처음 착용하는 일회용 렌즈를 끼웠다 뺐다 했다. 제 용돈 모아 예매한 티켓을 확인하고, 엄마아빠 없이 타 보는 전철 노선도를 암기했다. 최애 선수의 이름이 등에 박힌 하얀 유니폼에 검은 반바지를 입고 긴 생 머리를 찰랑거렸다. 입가에도 눈가에도 한껏 부푼 미소가 살랑거렸다. 딸의 최종 목적지는 고척 스카이돔. 집에서부터 35.4km 떨어져 있었다.
"나도 주말에 친구들이랑 에버랜드 가도 돼요?"
몇 주 전부터 생일 주말 일정을 꽉 채운 딸의 바람 아닌 바람에 휩쓸렸나. 아들도 전 날 에버랜드 노래를 했다. 학교 현장 체험 말고 친구 몇 명하고 가고 싶다고. 엄마 아빠 차 말고 대중교통으로 가고 싶다고. 마침 근처 스피드 웨이 써머 페스티벌에서의 래퍼들 공연도 보고 싶다고. 잠시 고민했다. 딸이 몇 살에 처음 에버랜드에 갔었는지 떠올렸다.
"그래."
함께 할 친구들을 모으고 누나의 도움으로 버스 노선을 검색했다. 흰 티에 흰 모자, 연한 청바지를 입은 아들의 입가에도 눈가에도 '신난다' 세 글자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아들의 최종 목적지는 22.7km 거리였다.
"오늘도 우리 뒷 방 늙은이 둘만 남았구려."
반짝이는 두 아이들이 떠난 두 방에는 허물 벗듯 벗어놓은 잠옷과 뚜껑 열린 파운데이션이 놓여 있었다. 요란법석 준비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았다. 대청소를 할까 집 정리를 할까 잠시 고민했다.
"우리도 나가 놀까?"
"그래."
무겁지 않고 가벼운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시원한 영화 한 편을 골랐다. 푸른 바다를 가르는 맘마미아 2 '댄싱퀸' 장면에 버금가는, 다섯 여인들이 헤치고 나아가는 '파도여'를 신나게 따라 부르며 캔맥주와 팝콘을 먹었다. 서점에 들러 밑줄 치며 읽을 책 한 권과 구겨지지 않게 조심히 아껴 읽을 책 한 권을 샀다. 주말 산행에 필요한 모자를 고르다가 인터넷 가격을 검색했다. 작은 치즈 케이크와 연어 초밥과 닭강정을 샀다. 시장 한편 국숫집에 들러 열무 국수 한 그릇 멸치 국수 한 그릇을 주문해 면치기를 했다. 도서관에 들러 책을 반납하고 다시 대출해 왔다.
가족톡방이 모처럼 활발했다. 도착 입장 동영상들이 올라왔다. 이 더위에 거기까지 뭐 하러 가냐는 말은 입 안에 넣고 잠갔다. 사진들에 빨간 하트를 눌러 주었다.
뒷 방 늙은이라고 하기엔 아직 우린 젊기에 , 괜찮은 주말 저녁이 있는 건 아니었다. 야구 중계가 마치자 남편은 채널을 돌려가며 세계 여행을 했다. 저런 게 재미있어 물으며 나는 닭강정을 하나씩 하나씩 집어 먹으며 책을 읽다가 자꾸 같은 줄을 반복하는 나를 인지했다. 책을 덮었다. 이제 주말 저녁에 본방 사수할 프로그램이 없다. 이제 남매는 거실에서 함께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 패드로 폰으로 보고 싶은 채널을 골라가며 본다.
마음은 자꾸 가족톡방에 가 있다. 자 이제는 아쉬운 눈물을 닦고 컴백홈할 시간인 것 같은데
"아빠가 데리러 갈게."
남편이 아들을 데리러 간 사이, 어깨가 축 처진 딸이 돌아왔다. 선수들을 눈앞에서 본 이야기, 사인받은 이야기, 최애 선수와 정면에서 눈이 마주친 이야기, 재잘재잘 이야기해 주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들은 별말이 없었다. "아, 더블 락스핀!'이라며 몇 번의 감탄사뿐이었다.
둥지를 떠난 남매가 언제 올까 노심초사 전전긍긍 좌불안석까지는 아니다. 떠났다 돌아온 남매가 맘 편히 먹고 마시고 씻고 늘어져 쉴 수 있도록 둥지를 잘 보듬어 놓을 뿐이다. 그런 주말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