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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씬디북클럽 May 14. 2024

다정 모녀 아니지만, 교정 모녀 맞습니다.

나의 치아 교정 일기 #8 모녀의 교정


교정 치료의 시작과 끝은 딸과 함께였다. 


딸의 교정 상담을 갔다가 엄마가 먼저 작했다.

엄마가 먼저 시작하고 딸이 먼저 났다.


사춘기 딸과 사십춘기 엄마의 교정의 여정은 길고 지난하기만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산 정상처럼.







"딸과 함께 교정하면서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요?"


"단, 두 글자로 답하겠습니다.

공감.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공감 (共感)

타인의 상황과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능력





한 달에 한 번 치과 진료. 한 달에 한 번 딸과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했다. 같은 차로 이동해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같은 화제로 얘기를 나누고 같은 메뉴를 먹고 같이 집에 왔다. 데이트가 아닐 수 없다.


아이의 기분에 따라 차 안의 공간은 냉탕과 온탕을 오고 갔다. 기분 풀려고 꺼낸 주제에 기분이 꼬이다가 엉켜 묶어 버리기도 했다. 이미 상할 대로 상한 기분, 대기실 소파에서도 진료실 반쯤 누운 침대에서도 남남 같다.


치과에도 한 달에 한 번, 건물 1층의 백종원 선생님의 우동집도 한 달에 한 번. 가장 많이 주문한 메뉴는 옛날우동. 4,800원짜리 두 그릇이 도착하면 국물을 후루룩 면발을 쪼르륵 행복감도 함께 당도한다.








"첫 진료 어땠어? 할 만하겠어?"

"내가 하고 싶다고 했으니 해야지. 선생님들이 나 예쁘대. 그 소리 오랜만에 들어서 자존감 올라갔어."

"뭐야. 엄마가 맨날 예쁘다고 하잖아."

"자기 자식한테 예쁘다 하는 거랑 다르지."



"오늘은 씹을 만하겠어? 저녁 해결하고 갈까?"

"나 우동 먹고 싶어."



"치과 가면 너무 졸리지 않냐? 엄마 깜빡 졸았어."

"나는 아예 잠이 들었어. 선생님이 여러 번 불러서 간신히 깼어."

"조명도 음악도 너무 졸리지 않니?"

"맞아. 맞아. 완전 꿀잠 각이지."



"다음 주에는 스크루 박는다는데. 그게 뭐야?"

"잇몸 뼈에다 구멍 뚫어서 나사 박는 거."

"윽! 설명만 들어도 아프다."

"마취해서 감각 없어. 뺄 때가 더 이상해. 마취 없이 그냥 슝 빼면 잇몸에 빨갛게 구멍 있다가 저절로 없어져."

"윽! 엄마, 그만 말해. 입맛 떨어져."



"너는 이 안 뽑고 하나 싶었는데, 결국은 하게 되었네. 축하한다."

"많이 아파?"

"음... 엄마는 치아 교정 과정 중에서 가장 슬펐던 것 같아. 멀쩡한 이를 왜 생고생해 가면서 뽑아야 하는지. 이불 덮고 울었지."

"울었는지 몰랐네."



"많이 아프지? 괜찮아?"

"좀 얼떨떨한데 참을 만 해. 근데 아까 치과에서 왜 내 사진 찍어? 사진 찍지 말랬잖아. 나는 아픈데 어떻게 사진을 찍을 수 있어?"

"이것도 기념이 될까 싶었지. 미안해. 이제 안 찍을게."

"어차피 다 찍었잖아. 절대 찍지 마, 앞으로."

"응..."

(다음엔 몰래 찍어야지.)



"나는 다음 주에 장치 뺀대. 신나."

"좋겠다. 역시 젊을 때 하니 좀 더 짧게 끝나나 보다. 부러워."

"엄마도 곧 빼겠지. 기다려."



"나도 다음 주에 장치 뺀대. 신나."

"올! 축하해. 근데 그거 빼고 무슨 물컹한 거 석고인가 뭔가 물고서 모형 뜨는 거 하는데, 기분 개이상해."

"개이상해도 좋아. 장치 빼는 게 어디야."







최근 시청한 한 유튜브 영상에서 그랬다. 가족 간의 감정은 애정보다는 애착이라고. 행복보다는 편안함과 안정감이라고.


방문을 닫고 들어가면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아이다. 밥상머리에서나 볼 수 있던 얼굴을 이제 밥도 방 안으로 넣어 줄 때가 많다. 차로 오가는 왕복 40여 분 동안 무해한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다. 평소에 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꺼내곤 했다. 애정으로 시동을 켜고 행복으로 주차를 할 때도 많았다. 우리 둘만의 순간들이 모여 한 시절이 되었다.







같은 질문을 딸에게도 해 보았다.



"엄 함께 교정하면서 좋았던 점은 뭔가요?"


"글쎄. 그냥 같이 병원 다닌 거?"




쳇, T 딸은 F 엄마가 기대하는 답을 주는 법이 없지. 그래도 괜찮다. '같이'라는 두 글자만 기로 했으니. 같이 아프고 같이 괜찮아지고 같이 예뻐지고 같이 활짝 웃기로.







덧)

안 그래도 함함한 나의 고슴도치는 교정 후 더욱  반짝였다. 번호를 달라느니 오디션 보러 오라느니, 입학 초 3월 내내 인기 만점이었다. 그런 인생은 어떤 삶일까. 그 삶 엄마 아빠가 열심히 벌어서 좀 더 잘 다듬어 준 거 잊지 마. 유지 장치 잘 끼고. 양치질도 좀 잘하고.


덧)

딸과의 교정 장치 셀카 몇 장을 사정사정해서 찍었지만, 절대 공개 불가이다. 나만 간직하는 걸로.


덧)

브런치북  '나의 치아 교정 일기'는 10화로 마무리 지으려 해요. 남은 두 화에서는 교정 기간 저의 셀카를 (용기 내어) 공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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