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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씬디북클럽 May 21. 2024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나의 치아 교정 일기 #9 교정 마지막날






2024년 3월 8일 금요일 맑음


"수고하셨어요. 오늘은 아래 장치 뺍시다."


길고 긴 교정의 끝이 보이고 들리고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석션으로 치아를 세척하자마자 드릴로 뭔가를 고 깨부수는 소리가 났다. 칫솔질보다 훨씬 정성 들여 이를 닦는 느낌. 립밤을 듬뿍 바른 입술. 입을 크게 벌려 개구기를 꼈다. 이제는 처음 개구기를 착용했을 때처럼 부끄럽거나 쑥스럽지 않다. 무한도전의 벌칙일 뿐이라고 되뇐다.


펜치로 세라믹 장치를 하나하나 깨기 시작했다. 흡사 탕후루를 이로 깨어 먹는 소리일까. 블랙 사파이어일까 샤인 머스켓일까. 새콤달콤 상콤한 이미지와는 달리 하나하나 빠지직 깨지는 소리에 소름이 돋아 절로 몸이 움츠러 들었다.


핑크색 점토 (아마도 석고)를 깨물어 본을 떴다. 물컹하고 질척한 느낌이 기분 나빴다. 아래 유지 장치 제작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다음 주에는 위쪽 장치를 제거하고 위쪽 유지 장치 제작을 위한 본을 뜰 예정이라고 했다.


크게 "이~" 소리를 내고 입을 벌려 교정 장치를 뗀 이를 바라보았다. 어색하고 이상했다. 입술 사이로 미소가 삐죽삐죽 새 나왔다. 진짜 이제 거의 끝이 다 왔다.

 





 



2024년 3월 18일 월요일 맑음


길고 긴 치아 교정의 끝,

정말 그 끝나는 날이 되었다.


열흘 전과 똑같은 과정이 진행되었다. 세척 드릴 립밤 개구기 펜치 탕후루 소름


지난 방문에 핑크색 점토를 깨물어 본을 떠서 만든 아래 유지 장치를 마주했다. 철사로 만들어져 연분홍빛 잇몸 색깔의 불투명한 것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어르신들 틀니 같아 보였다.

   

핑크색 점토 물컹 질척, 위쪽 유지장치 제작을 위해 열흘 전과 똑같은 과정이 진행되었다.


크게 "이~" 소리를 내고 입을 벌려 교정 장치를 전부 떼어낸 이를 바라보았다. 어색하고 이상했고, 예뻤다. 마음에 쏙 들었다. 삐져나오는 미소 대신 활짝 이를 벌려 웃었다. 좀처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진짜 이제 끝이다. 정말로 끝.


유지 장치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치아 뒷면에 부착된 가는 철사는 고정성으로 (아마) 평생 그대로 유지된다고 한다. 위아래 별도로 제작된 가철성 장치는 6개월 간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24시간 착용을 강권했다. 세척 제품과 보관 방법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설명을 듣는 중에서 새어 나오는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치과를 나서는 길, 새삼 실감이 나자마자 울컥했다. 근무 중인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 교정 장치 다 떼고 치과 나왔어."

"올~ 축하해. 기분이 어떻노."

"너무 좋아서 나 눈물 날 것 같아.

다시 태어나게 해 줘서 고마워."

"고생했다. 축하한다."


나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3월의 봄 햇살이 비치는 거리를 걸었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릴 때마다 셀카를 찍다가 본격적으로 찍고 싶어졌다.


인생 네 컷 사진을 찾았다. 머리에는 Happy Birthday라고 쓰여 있는 머리띠를 썼다. 그래, 나 다시 태어났으니 오늘이 내 생일이다. 이를 활짝 벌리고 미소를 지었다. 눈을 부릎 뜨고 입술을 다물고 온화한 미소로만 찍던 셀카를 한껏 벌린 입으로 여덟 번 촬영했다. 내내 어색하고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신중하게 고른 점심 메뉴는 칼국수. 이에 안 닿게  후루룩 마셔버리기 신공으로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함께 내어 주시는 겉절이와 깍두기를 먹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먹었다. 어떤 메뉴를 먹든 이 사이에 반드시 뭔가가 끼곤 했는데, 세상에나, 아무것도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작고 고운 고춧가루 하나도.


착색될라 조심조심 커피 한 잔을 들고 걸으며 비오 는 날 머리에 꽃 꽂은 소녀 마냥 싱글벙글 혼자 웃었다. 오늘 날씨는 맑음, 누가 뭐래도 맑고 맑음.


누구한테 자랑을 할까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천천히 이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결심했다. 제목은'나의 치과 교정 일기'. 브런치북 연재를 시작하기로. 오늘 이 흥분되는 기분은 제일 마지막 즈음에 기록하기로.





2024년 3월 25일 월요일 흐리고 비


일주일 전과 같은 과정으로 제작된 위쪽 유지장치를 받았다.

위아래를 동시에 착용하면 조이는 느낌이 들었다. 발음도 새고 답답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열심히 착용할 것이다.

쪽에 착용할 수 있는 투명한 장치도 받았다. 내가 보아도 거의 티가 나지 않고 금속 장치보다 조금 더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발음하기도 조금 편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즐기세요."


마스크 속의 의사 선생님도 활짝 웃고 계셨다. 더 활짝 웃으며 치과를 나섰다. 오늘은 흐려도 맑음. 비가 와도 맑음. 마음만은 맑아도 너무 맑음.







20201019 - 20240318

만 3년 5개월

1246일


치아 교정 기간 셀카 모음

다음 10화 (마지막화)에서 공개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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