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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Aug 19. 2016

탈 것들의 기억

요즘 나의 교통수단은 오로지 승용차뿐이지만 한국에서는 참 많은 교통수단을 이용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이런 사소한 것까지 그립다니 새삼 놀랍다. 나도 학창 시절 교복을 입고 매일 버스를 타고 다닌 적이 있는데, 나도 야근 후 번질나게 택시를 탔었는데, 나도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사람들이 들어찬 지하철을 타고 다녔는데, 나도 삶은 계란 생각나는 기차를 탄 적이 있는데 하고 곱씹을 때면 그러한 소소한 경험들이 내 몸 어딘가에 녹아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물론 미국에서도 탈 수 있지만 아쉽게도 내 생활 반경 안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 


그 버스에, 택시에, 지하철에, 기차에 많은 이야기가 넘쳐났었다. 난폭운전을 하던 버스기사 아저씨에게 분노하고 때론 여자 혼자 밤에 다니면 위험하다고 골목길로 접어들어 집 바로 앞까지 내려주는 친절한 택시 아저씨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지하철에서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스스로 뿌듯해하고, 혼자 기차를 타고 갈 때에 옆자리에 누가 탈까 기대하던 그 감정들이 내겐 더 이상 쉬이 허락되지 않는다.  


아직도 나는 지하철에서 흘러나오던 그 구수한 안내방송을 기억한다. 

"우리 열차는 이번 역까지만 운행하는 열차입니다.~"

'우리'라는 말을 자주 쓰는 한국사람들은 '우리'의 경험이 참 많은 것 같다. 나는 '내' 승용차만 타고 다니고 주로 '나'만 타고 다니니 내 이야기만 넘치고 '우리' 이야기는 좀처럼 없다. 

우리가 내린 종착역은, 누군가의 출발역이기도 하다.

광고 일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멋지다고 생각하는 일본 JR 철도 광고 카피다. 내가 한국에서 탔던 수많은 탈 것들은 그렇게 누군가에겐 종착역이고 누군가에겐 출발역이었다. 내가 타고 내린 곳들에 내 이야기가 쌓이고 그 위에 네 이야기가 덮이고 그렇게 '우리' 이야기가 되고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탄 비행기가 내린 LAX 공항이 언젠가는 내게 또 다른 출발지이길 바라며 나는 언제나 인생의 새로운 여행을 꿈꾼다. 그 탈 것에는 또 '우리' 이야기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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