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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Feb 12. 2016

괴로우나 즐거우나 사랑해야 할

우리나라 대한민국

내가 떠나올 때에는 헬조선이라는 말도 탈조선이라는 말도 없었는데 내가 미국에 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는 그런 단어들이 생겨나고 사회적인 화두가 되었다. 그래서 얼떨결에 나는 운 좋게 헬조선을 탈출한 사람처럼 비치게 되었다. 나는 그래서 한국을 떠난 것은 아니었는데...


나는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처럼 한국이 싫어서 떠난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를 꼽자면 삶의 쉼표가 필요했고 그 쉼표를 가족과 함께 찍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의 가족은 미국에 산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우리가 무슨 선견지명이 있어 일찍이 우리나라를 뜬 것도 아니었고 그저 내 동생들이 여기에서 태어났고 그 덕에 나머지 가족들도 초청될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아직 한국인이다.


이제 미국 마트에 가서도 김과 김치를 살 수 있을 만큼 많은 제화와 서비스들이 국경을  넘어 오고 간다. 바야흐로 글로벌 시대가 온 것이다. 더욱이 인터넷의 발전으로 우리는 해외여행 가는 사람 편에 무엇을 사 달라고 부탁하지 않고도 클릭 한 번에 바다 건너 사고 싶은 것을 직구하는 시대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아직도 노동력 시장은 완전 개방되지 못했고 다른 나라에 살고 싶다고 해도 그 다른 나라는 선뜻 내게 살 곳을 내어주지도 살게 허락해주지도 않는다. 가족이 미국인이고 미국의 살 권리가 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내게조차도.


한국에서도 요즘 계속 보도되었듯이 미국 내 많은 한국사람들이 미국에서 살 권리를 얻고자 3D업종에 일하거나 미군에 지원한다. 심지어는 사랑 없이 시민권자와 결혼을 하기도 한다. 


시리아 난민들처럼 생존의 위협을 받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나 많은 한국사람들이 이토록 절실하게 탈한국의 길을 택하게 되었을까? 그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나는 다  들여다볼 수 없고 아마 답은 수만 가지일 것이다. 


<한국이 싫어서>에서 생각나는 구절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 애국가와 호주 애국가를 비교한 것인데 우리 애국가는 주체가 대한민국이다. 하느님이 보우하시는 것도 우리나라.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사랑해야 할 대상도 우리나라이다. 반면, 호주의 애국가의 주체는 모두 '나'라고 한다. 


그 수만 가지 답 중에는 아마 나는 나라를 사랑했는데 나라는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언제나 짝사랑은 서글프고 어렵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앞에서 나는 더 이상 사랑의 도끼를 휘두르지 않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이 짝사랑이 남긴 유산이 나라에 대한 실망과 증오라니 이 얼마나 비참한가. 그렇게 발길을 돌리는 수많은 한국사람들의 뒷모습이 너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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