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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Sep 27. 2016

지속 가능하지 않아도 슬프지 않게

살면서 몇 명의 사람들과 나는 만나게 될까. 내가 사는 이 곳에서 나는 내 차로 혼자만 집과 회사를 쳇바퀴처럼 돌고 돈다. 서울에서처럼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않으니 내가 하루에 만나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라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기도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모든 만남이 설레지는 않지만 서른에 가까운 나는 아직도 내 인생에 걸어 들어오는 이들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갖고 있다. 그들이 어떤 마음과 동기로 내게 왔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가끔은 내가 그들을 대하는 마음과 동기 또한 매우 이기적이고 계산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이는 당연할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사실 이전에는 이런 것들도 나의 인연 맺기에 제법 중요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많은 지난 인연들 속에서 내게 남은 것은 그런 사소한 것들이 아닌 우리가 보낸 시간과 그때의 너와 내가 보여준 마음들이기에 나는 새로운 만남 속에서 어떻게 하면 더욱 풍성한 시간을 보낼지 어떻게 하면 나의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을지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늙는 것은 서글프지만 이렇게 배우는 것이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된다.


한 때 한국에서는 지속 가능한 개발, 지속 가능한 관광, 지속 가능한 에너지, 지속 가능한 경영 등 sustainability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퍼졌다. 아니 지금도 저 윗사람들은 sustainable 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느라 머리를 굴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신조어들 중에 왜 지속 가능한 관계는 나오지 않았을까? 우리의 삶 자체가 그렇게 프로그래밍되어 있어서일까.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에 우리는 어떠한 형태로든 이별하고 종국엔 인연은 끊어진다.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인간은 사실 지속 가능한 관계 맺기가 애초에 불가능한 종족 일지 모른다.


사람의 뇌를 연구하는 인지과학자들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우리 자신의 마음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족속이라고 한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우리가 타자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 속을 다 들여다볼 수 없어 그의 말과 행동으로 그 마음을 헤아리듯이 우리는 우리 마음조차 알지 못해 타자를 볼 때의 그 불완전함으로 우리 자신의 마음을 헤아린다.


결국 나의 결론은 이렇다. 나의 마음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간들이 서로 만나 관계를 맺고 사랑하고 그렇게 이어지는 것은 머리를 굴린다고, 대단한 계획을 세운다고, 과학의 논리를 들이댄다고 되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어쩌면 모든 것은 그냥 우연의 결과일지도 아니면 우리는 어쩌지 못하는 신의 특별한 계획일 것이다. 그러니 주어진 시간 안에 나는 그냥 그 시간과 마음을 소중히 여기면 된다.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이별하고 산다. 어제의 이별과 오늘의 이별과 내일의 이별의 이유는 그리 중요치않다. 어제는 다시 올 수 없는 오늘이고 오늘은 금방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어제가 될테다. 내일도 시간이 흘러 다시 그 어제가 될 것이다. 너도 그냥 나의 수많은 어제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나는 그냥 내 인생에 걸어 들어오는 누군가가 내 세상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를 나의 세계와 마주하여 좋은 에너지를 얻어가길 바랄 뿐이다. 내가 미루어 짐작한 너의 마음과 내가 똑같이 그 눈으로 가늠하는 나의 마음이 선한 것이었으면 한다. 지속 가능하지 않아도 슬프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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