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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Sep 15. 2016

부산 가는 길

벌써 미국에서 맞는 세 번째 추석이다. 한국은 오늘부터 대부분 연휴에 돌입했지만 내게 이번 한 주는 그저 여느 때와 똑같은 한 주이다. 쉬지도 따로 가족이 모이지도 않는다. 송편을 따로 해먹지도 않을 것 같다.


어릴 때는 매번 명절은 내게 부산 가는 날이었다. 하필이면 시골집이 제주도 빼고 서울에서 제일 멀다고 할 수 있는 부산이라니. 오 남매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 우리 가족은 기러기 생활을 시작했으니 나의 기억 속 귀성길 풍경은 다섯 식구였을 때에 멈춰있다. 운전석에 앉은 아빠와 온갖 간식을 싸서 조수석에 탄 엄마, 그리고 뒷좌석에 쪼르륵 앉은 우리 세 자매.


지금은 경부고속도로에 이리저리 새길을 내어 서울에서 출발하면 4시간도 채 안되어 부산에 도착할 수 있다지만 그때에는 하루 온종일 걸려야 부산에 도착했다. 명절 때는 해뜨기 전에 출발했는데 해지고 도착하기 일쑤였다. 명절에 부산 가는 길은 더디고 힘들었지만 엄마, 아빠에게도 그들의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는 부산은 가고 싶은 길이었고 가야만 하는 길이었다.


아무 생각이 없던 우리 꼬꼬마 셋은 그저 귀성길에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자리를 차지하고 갈 수 있을까만 중요했다. 그 길 끝이 부산이 아니어도 좋았을지 모른다. 우리가 탄 차는 우리 다섯 식 구로 꽉 들어찼고 그곳에는 손톱만큼의 불행도 낄 틈이 없었다. 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귀성길의 기억은 생생한데 귀경길의 기억은 희미하다. 아마도 귀성길의 끝에는 손녀들이 좋아하던 식혜를 정성스레 빚고 기다리던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기다림이 있는 곳에 가는 길은 설레지만 다음 명절까지의 긴 헤어짐을 놔두고 돌아오는 귀경길은 찝찝했다.


“우리가 쉬운 길을 택하기 시작하면 우리 새끼들도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할 것이고, 곧 거기에 익숙해지고 말 거야. 그러나 폭포를 뛰어넘는다면, 그 뛰어넘는 순간의 고통과 환희를 훗날 알을 깨고 나올 우리의 새끼들에게 넘겨주게 되지 않을까.” 안도현 작가의 작품 <연어>의 한 구절이다. 연어처럼 사람도 때가 되어 모천회귀하는 것이 몸에 배어 태어난 것일까. 우리는 왜 그렇게 죽자 사자 고향에 가고자 했을까. 쉬운 길로 가려하지 말고 어려운 길도 갈 배짱과 용기를 심어주려고 귀성길은 그렇게 힘이 들었나 보다.


귀성길의 지난함이 떠올랐다가 가슴 한 편이 아려온다.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마저 계시지 않는 부산의 비릿한 짠내가 저 밑에서부터 둥둥 떠오른다. 내게도 정말 모천회귀 본능이 장착되어 있다면 언젠가 내가 가야 할 길은 부산인가 보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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