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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Sep 29. 2016

Thoughtlessly

막살아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항상 누군가의 누군가로 살아가는 데에 익숙해 있었다. 집에서는 말썽 안 피우는 장녀, 그래서 모범이 되는 언니 혹은 누나, 학교에서도 자기 할 일 잘 하는 선배 그리고 똑똑한 제자, 회사에서는 시키는 일 잘 하는 말 잘 듣는 직원, 애인에게는 사랑스러운 여자 친구. 누군가의 누군가로 사는 건 딱 그만큼의 역할만 하면 되니 어찌 보면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바대로 막사는 데에는 많은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돈을 포기해야 하고 그럼 나는 초라한 누군가의 누군가가 될 것이다. 아니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나 하고 싶은 일을 막 하면 나의 누군가가 나를 창피해할 것이다. 사회적으로 지탄받을지도 모른다. 내가 막 공부하기 싫은 날 그냥 막 수업을 빠지고 내 인생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은 과제들을 하지 않았으면 나는 아직 졸업하지 못했을 것이다. 졸업하지 못했으면 번듯한 직장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애인으로 살면서 밀당을 한답시고 서로 마음을 다 주지 않고 이리저리 쟀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막 나아가지 못하고 나를 막 던지지 않았다. 그래서 놓치고 후회하고 헤어지고 그리고 그렇게 잊혔다. 그리고 또 누군가를 만난다.


아무렇게나 함부로 thoughtlessly 막살면 나는 정말 구제불능이 될까? 어쩌면 네 말처럼 나는 너무 생각을 많이 안고 사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생각 없이 막사는 실험 같은 걸 해봐야겠다. 엄청 고민하고 계획해도 되기 힘든 것이 많은데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막살면 나는 뭐가 되는지 봐야지. 누군가의 누군가로 사는 삶이 아닌 진짜 내 삶 같은 게 그 끝에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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