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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Oct 21. 2016

서로의 몫

"오 남매? 정말 오 남매라고?" 오늘도 상대방에 눈엔 의구심 반, 놀라움 반의 감정이 섞여있다. 하긴 요즘 시대에 오 남매가 웬 말인가? 나도 가끔은 내가 오 남매의 장녀라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이니 말 다했다. 여느 집 외동아이들처럼 사랑을 독차지하진 못했지만 오 남매의 일원으로 자란 경험은 내게 큰 자산이다.  


내가 처음 혼자 버스를 탄 것은 초등학교 1학년생이었을 때다. 나의 홀로 버스 타기 첫 경험은 '이보람 어린이 실종사건'과도 이어지기에 나는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엄마는 1번 버스를 타고 서초어린이집 앞에 내려서 동생을 데려 오라고 했다. 엄마는 분명 이 버스를 타면 서초어린이집 앞 정류장에 내려줄 거라고 했는데 버스는 서초어린이집 직전 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했다. 나는 버스 기사 아저씨가 다시 돌아 서초어린이집 앞에 내려줄 것이라 굳게 믿고 1번 버스 종점인 정릉까지 갔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 나는 그렇게 몇 시간째 행방이 묘연한 실종아동이 되었고 내가 그 1번 버스를 다시 타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우리 집은 제법 큰일이 벌어진 듯한 분위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어떻게 초등학생인 나를 믿고 혼자 버스를 태워 유치원생 동생을 데리고 오라고 했을까?


시끌벅쩍했던 혼자 버스 타기 사건은 우리 엄마, 아빠에게 그리 큰 타격을 주지 못했는지 우리 세 자매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셋만 달랑 기차에 실려 부산까지 간 적도 있다. 물론 하차시간에 맞춰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와 계시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 아빠는 정말 간이 크다. 이 곳 미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엄마, 아빠는 내 여동생들을 일찍이 먼 미국 땅에 유학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중학생 때부터 내 여동생들은 부모 없이 컸다. 부모와 떨어져 자랐는데도 개차반이 되지 않고 잘 자라 제 앞길 잘 가는 동생들을 보면 기특하다. 부모가 옆에 꼭 붙어 전전긍긍하며 키워도 개차반인 애들도 수두룩한데 말이다. 


나랑은 열 살이 넘게 차이나는 남동생 두 명은 우리 세 자매가 업어 키우다시피 했다. 어린 동생들과 같이 다니다 시집도 안 간 처자가 젊은 새댁이란 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남동생들은 어느새 우리들 키를 훌쩍 넘어 이제는 고개를 들어 보아야 할 정도로 훤칠해졌다. 열심히 사는 누나들을 봐와서인지 고맙게도 말썽 없이 잘 자라 주었다. 이제는 곧잘 집안일도 돕고 조카들과 놀아주는 것을 보니 내리사랑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집은 한 명 없어져도 티 안 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집에 한 명만 없어도 온 집안이 허전하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 엄마, 아빠는 한분씩이니까 그들이 줄 수 있는 것도 한 사람이 해낼 몫에서만 나올 것이다. 그래서 엄마, 아빠의 몫을 우리 조금씩 나눠 가져 결국 나는 내 동생들의 부모이기도 그들 또한 나의 부모인 것처럼 그냥 서로 그렇게 사는 운명인가 보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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