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ram Lee Feb 09. 2016

남한 사람

할머니는 '남한 사람'이라는 말을 참 많이도 했다. 전쟁을 겪은 세대여서 남과 북을 확실히 갈라 표현하는 것인가 하고 넘겼다. 할머니와 함께 살기 전에부터 들었던 단어이니 그리 괘념치 않았다.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이 년여 남짓을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게 되었다. 할머니는 말했다.


"남한 사람들은 다 일찍 죽어야 해. 자식들 편케"

"남한 사람들이랑 사느라 힘들지. 네가 고생이 많다."

"남한 사람들 귀가 다 시원찮지 뭐."

"노인정 가니 죄다 내보다 남한 사람들뿐이더라."


할머니와 살붙이며 살고서부터 나는 남한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투리가 짙던 할머니의 나이 많은 사람이라는 말은 내 귀엔 그동안 남한 사람으로 들렸던 것이다. 27년 만에 제대로 알아들은 것이다.


퇴근하고 돌아온 나에게 할머니는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치매 걸린 할아버지와 한나절을 보내면 말동무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으리라. 하루 종일 회사일로 녹초가 되어 돌아온 나는 또 할머니에게 시달리기 싫어 집에 들어서자마자 종종 "할머니. 나한테 말 걸지마."를 선언하기도 했다. 


남한 사람 말고도 내게 할머니가 했던 많은 말들 중 끝내 풀지 못한 수수께끼 같은 이상한 단어들이 아직 많다. 할머니와 마주 앉아 잘 못 알아 들어도 하루 종일 말동무를 해드리고 싶어도 이제는 할머니가 없다.   


나중에 할머니를 만나면 그동안 궁금했던 말들을 다 물어볼 참이다. 그리고 나도 요즘 애들이 쓴다는 지못미, 낄낄빠빠, 버카충이 무슨 뜻인지 알려드려야지.



작가의 이전글 이 겨울, 사랑을 품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