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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Mar 09. 2017

쑥국 먹는 날

인류가 처음 생기고 가장 먼저 한 활동은 수렵과 채집이었다. 그다음 농경사회 등을 거쳐 지금의 문명사회에 이르렀다고 배웠다. 문명사회 한가운데서 태어난 나지만 나에게도 수렵과 채집 활동의 기억이 있다. 수렵이래 봤자 우면산 계곡에서 가재 잡던 것이 전부고 채집도 초록색 땅이 보이기만 하면 쑥이 있나 찾아본 게 다다. 가재는 잡아서 먹지 않았으니 사실 수렵이라고 보기도 어려울 것 같다. 


쑥 채집은 할머니를 보고 배웠다. 할머니는 곧잘 검정 봉지를 들고 '쑥 찾아 삼만리' 길에 올랐다. 우리 세 자매는 그런 할머니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다. 쑥은 생김새가 독특하여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민들레와 약간 헷갈리긴 하지만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 코를 갖다 대면 금방 쑥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었다. 구수한 쑥 냄새와 함께 쑥인지가 판가름 나면 우리의 고사리 같은 손은 바빠졌다. 여기에 할머니의 구성진 노랫가락이 곁들여졌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쑥을 뜯어 봉지에 담았다. 네 명이 합심해서 쑥을 뜯으니 제법 커 보이던 봉지도 어느새 꽉 찼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가 돼서야 우리는 바지 무릎께 흙을 털고 일어났다.


그럼 그 날 밥상에는 쑥국이 올라왔다. 흙을 털고 깨끗이 쑥을 씻는다. 집된장을 풀어 쑥을 넣고 보글보글 끓인 쑥국은 노동의 보람이라는 값비싼 조미료까지 합세하여 더없이 꿀맛이었다. 맛도 맛이지만 쑥은 건강에도 좋은 건강식품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7년 된 병을 3년 묵은 쑥을 먹고 고쳤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옛말이 틀린 것이 하나 없는 게 쑥국을 먹고 자라서인지 우린 잔병치레 하나 없이 컸다. 


모든 것이 돈만 주면 쉽게 얻을 수 있는 문명사회에서 나는 돈 벌기보다 먼저 채집이라는 노동의 의미를 배웠다. 물론 쑥도 시장에서 천 원만 주면 한 보따리를 살 수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 적잖이 놀랐지만 말이다. 그렇게 샀으면 그때 먹은 쑥국만큼 맛있지는 않을 것이라 자위한다. 


딱 이맘때면 한국에선 쑥이 지천에 깔렸다. 봄바람이 살랑이던 날에 쑥 뜯으러 나서던 그때의 꼬마숙녀 셋은 이미 훌쩍 커버렸다. 채집의 역사는 이미 잊은 지 오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까 궁리한다. 바로 앞 슈퍼도 걸어가지 않고 운전해 갈 때가 많다. 그 옛날에는 쑥을 캐러 산과 들을 쑤시고 다녔는데 말이다. 우리들의 쑥 따기 대장이었던 할머니도 일찍이 돌아가시고 없다. 할머니의 부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야속하게 봄은 또 왔고 어딘가에는 쑥이 또 필 것이다.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봄볕이 참 따스한 오늘, 가만히 눈을 감고 어딘가 피어 있을 것만 같은 쑥 향기를 찾는다. 초록빛 봄 공기가 폐까지 차 들어온다. 그때의 할머니가 흥얼거리던 노동요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다. 내 마음도 덩달아 살랑이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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