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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Mar 28. 2017

좋은 예감

매일 아침 일어나면 확인하는 것 중 하나가 페이스북 'On this day'이다. 내가 과거의 똑같은 날 올린 포스트를 보여주는 창이다. 과거의 오늘 나는 출근길 우성아파트 담장을 수놓은 벚꽃나무 사진을 올려놓았다. '봄이 왔구나'싶다. 아니 '봄이겠구나'싶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던 풍경이었다. 추운 겨울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내게 따뜻한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이었다. 지겨운 출근길에 누릴 수 있는 찰나의 호사였다. 눈으로 담고 코로 들이 마쉬어 가슴에 꼭 담았는데 여태 까먹었다 미안하게 이제야 다시 생각났다. 


우리 집 앞, 하얀 목련의 자태도 떠올랐다. 학교로 일터로 지친 몸을 끌고 나가야 할 때 항상 입구에서 응원하던 생명이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터를 잡고 사는 동안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매년 봄 항상 그 자리에 피어 나의 눈을 호강시켜주었다. 


버스를 기다리던 서울고 앞 담장의 철쭉길도 생각이 난다. 진한 분홍빛 철쭉이 칙칙한 남고생 무리들 사이에서 수줍게 빛났었다. 아주 옛날에는 철쭉꽃을 따다 잎에 물고 단물을 빼먹으며 놀기도 했다. 


올 해에는 메마른 캘리포니아에 비가 참 많이도 왔다. 고속도로 옆 낮은 산등성이들이 보통 같았으면 거무튀튀 흙빛이었을 텐데 이제는 제법 푸르고 곳곳에 야생화가 제 빛깔을 뽐낸다. 꼭 누르면 물이 새어 나올 것만 같이 촉촉한 초록빛이다. 반가운 풍경이다. 낯선 이국땅의 이름 모를 꽃들이 각자의 향을 뿜어낸다. 꽃향기의 향연에 취해 어지럽기까지 하다. 이 생경한 풍경도 훗날 내가 좋아하던 풍경이 될 것이다.


어딘가를 향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을 때에 나를 항상 북돋아주던 그런 풍경들이 곳곳에 있었다. 나는 새삼 내가 누리던 풍경이 얼마나 고마운 것이었는지 나는 또 얼마나 축복받은 존재였는지 깨닫는다. 나의 모습도 누군가의 출발에 힘나는 응원이 될 수 있을까? 보잘것없는 인생이지만 누군가에게 꽃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좋아하는 풍경으로 남을 수 있다면 참 귀한 일 것이다. 


꽃이 흐드러지는 오늘, 너와 나의 새로운 시작은 또 수많은 꽃들의 소리 없는 응원을 받는다. 어디로 발을 내딛든 예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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