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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Mar 29. 2017

글 쓸 이유

어느 책에서 중년이 된 주인공은 나이 듦을 슬퍼하지 않지만 딱 한 가지 이유로 청춘을 부러워한다. 청년들은 살아온 날이 짧기에 과거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서른이 되어 그다지 슬픈 것은 없는데 이 점은 야속하다. 더 나이가 들면 내가 살아온 날들이 그만큼 더 많아져 다 속속들이 기억하지 못하게 되겠지. 그럼 어떤 순간들은 나도 모르게 희미해져 다시 곱씹을 수 없을 테니 조금 아쉽다. 생의 모든 날들이 다 황홀하진 않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까지 다 나름의 의미가 있고 그때의 쓰라림과 안타까움, 절망도 다 내 삶의 소중한 밑바탕이 되었다. 그 시간들이 그저 '좋았던 시절', '나빴던 시절'로만 구분되어 기억되거나 아예 지워지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기억력 안 좋은 나는 나중에 내 과거를 뒤돌아보며 그 주인공처럼 무엇이 짐이었고 무엇이 축복이었는지 알 수가 없게 될까 두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쓰고 또 쓰는 것인가 보다. 과거의 미처 참회하지 못했던 일을 상기하여 용서를 구하고 철 지난 영광을 재생하여 오늘 살아갈 힘을 얻고 뜨겁게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날들 속에서 애틋함을 찾는다. 그렇게 과거를 쓰며 현재를 산다.


오늘 글 쓸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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