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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Apr 25. 2017

결혼에 대하여

이미 결혼한 주위 사람들과 막 그 설레는 첫걸음을 뗀 이들의 모습을 볼 때면 나는 부러움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했다. '아, 또 한 명이 고난 길로 접어드는구나.' 그 길을 가보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길이 내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지는 쪽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더불어 남자가 만든 것이 분명한 결혼이라는 제도의 불평등함과 결혼과 함께 따라오는 시집살이, 출산과 육아, 새로운 관계 및 허례허식은 말만 들어도 숨이 막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일과 십 분의 일처'라는 짧은 글을 읽었다. 내용은 이렇다. 선생과 함께 수감생활을 하던 한 죄수에게 처가 면회를 왔다. 선생은 그들의 대화를 통해 그의 처가 생계를 위해 몸을 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몸값을 후하게 받는 것도 아닌 동네에 홀아비들, 일거리를 찾아 떠도는 노동자들에 몸을 팔아 겨우 먹고사는 모양이다. 죄수는 지아비를 두고 몸을 파는 마누라를 나무랄 수가 없다. 그저 그렇게 가끔씩 잊지 않고 찾아와 얼굴을 비추는 처라도 있어 감사할 뿐이다. 선생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에 아직도 기본적인 일부일처제마저도 지키지 못할 만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이 있음을 한탄한다. 그네들에겐 남들 다 갖는 것 같은 참한 색시와 토끼 같은 자식이 사치인 것이다.  


글을 보며 누군가와 인연을 맺고 한 남자의 한 여자로, 한 여자의 한 남자로 사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상상도 못 할 축복임을 새삼 깨달았다. 나의 세계는 너무 편협하고 소외된 이웃을 품지 못하는구나. 내 옆 한 켠을 내어 누군가를 평생 품고 가는 일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오늘은 사랑하는 사람을 나누어 가져야만 하는 이들의 슬픔을 상상해본다. 그 십 분의 일이라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한 이들의 처지를 생각해본다. 지금까지 누군가를 나누어 사랑하지 않아도 되었음을 그리고 그들로부터 나눠진 사랑을 받지 않았음에 내 삶이 얼마나 축복된 삶이었는지 깨닫는다. 타인의 불행을 재단하여 나의 행복을 찾는 일은 정말이지 고통스럽지만 존재가 미약한 나는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오늘에서야 결혼한 친구들이 그리고 누군가와 결혼을 약속한 친구들이 참 대견하고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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