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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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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Jul 07. 2017

쓰고 지우는 일

나는 문득 어떤 생각이 날 때에 자리 잡고 앉아 금방 글을 쓰곤 한다. 가끔은 맘먹고 앉아 '써볼까?'하면 손이 저절로 글을 쓰고 있기도 한다. 매번 마음에 드는 글을 쓰진 않지만 나는 글쓰기가 좋다.

매일 어떤 생각들이 샘솟지는 않기에 무엇인가를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을 때가 있다. 차라리 누군가 이런 주제로 글을 써보라고 강제로라도 시키면 좀 써질까 싶을 때도 있다. 물론 시킨다고 얌전히 글 쓸 인물은 못 되는 것도 맞다. 그래도 계속 쓰다 보면 더 잘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많이 쓰려 노력한다. 


오늘은 글을 썼다 지우고 다시 쓰고 또 지운다. 꾸역꾸역 써놓았더니 영 마음에 들지 않고 이 것이 내 이야기인 것 같지 않아 지워간다. 지우면서도 금쪽같은 내 새끼를 끊어내는 것 같아 또 마음이 쓰인다. 글을 쓰는 일에도 나 자신을 많이 쏟아부어야 하고 이를 지우는 일에도 많은 감정이 소모된다. 미련 없이 지워야 하는데 못내 아깝고 안타깝다. 나중에 써먹을 데가 있을 것 같아 괜히 미련이 남는다. 지우면 다시 내게 안 올 언어들일까 봐 두렵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를 사귀고 또 잊는 일과 닮았다. 너와 내가 만나 함께 첫 문장을 써 내려가는 일에는 엄청난 우연과 마음이 따른다. 그렇게 어렵고 귀하게 써 내려간 글인데 그 글을 지우는 일이 어찌 쉬울쏘냐. 한 글자를 지우는 일도 마음이 부서지고 온 세상이 어지럽다. 어떤 때에는 소설책 한 권을 가득 채울 만큼 긴 글을 썼다가 순식간에 모든 걸 지워버리고 싶은 때도 있고, 그래야만 할 때도 있다. 너와 내가 만나 항상 좋은 글을 써 내려가면 좋겠지만 이 세상 모든 글쓴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다 내놓지 못하듯 어떤 글은 폐기되거나 묻힌다. 어떤 관계도 폐기되거나 묻힌다.

쓰는 것이 어려운지 지우는 것이 어려운지에 대해 답을 찾지 못했다. 계속 쓰다 보면 지우는 일도 쉬워질까? 그것도 잘 모르겠다. 다만, 정말 좋은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 나는 또 쓰고 쓸 것이다. 너와 나도 지워질 필요 없는 어느 페이지를 채우기 위해 또 만나고 시작하겠지. 그럼 난 여느 때처럼 또 최선을 다해 써내려 가려고 한다. 


어떤 날은 아무런 노력 없이도 후딱 글 한 편을 써 내려가듯 어느 운수 좋은 날, 나와 꼭 맞는 벗을 만나 평생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다. 우리 이야기는 퇴고할 필요 없이 그저 좋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그 마음으로 펜을 든다. 펜대 끝으로 금방이라도 네가 들이닥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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