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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Mar 23. 2016

죽을 때 남길 것

또 죽었다. 죽었다 생각하고 살았는데 아무 말도 없이 찾아와 이렇게 또 죽어버렸다.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에서 남자 주인공이 어렸을 때 자신을 버린 어머니가 늙고 병약해지자 자신을 찾아왔다가 곧 죽자 이를 원망하며 쏟아내던 대사이다. 다른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 대사만 남았다. 어린 나이에 생이별을 해야 했던 주인공은 다시 찾아온 어머니로부터 다시 일방적인 이별을 선물 받는다. 그에게 어머니가 남긴 유산이라고는 이별밖에 없는 셈이다.


나는 죽으면 무엇을 남길까? 부자가 되어 엄청난 재산을 남길까? (빚만 남기는 거 아냐?) 아니면 정말 원하던 바 대로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 운 좋으면 여러 권을 남길까? 남길 수 있는 것이 슬픈 것이 아니라 기쁜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이다.


누군가와 죽음이라는 형태로 이별하는 것은 슬플 수도 아주 솔직하게는 홀가분할 수도 있겠다. 태어나는 것은 만 10개월이라는 정해진 기한이 있기에 예상하고 준비할 수 있지만 죽음은 갑자기 찾아오기도 하며 혹은 의사가 기한을 선고한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더 짧거나 길게 늘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죽음이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에 나는 더 생각이 많아진다. 이 것은 내가 계획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목숨은 신이 주신 것이기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주신 몸뚱이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인간이 살고 죽는 것도 다 자기 맘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세상은 참 어지러울 것 같다. 하지만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나의 죽음은 분명 누군가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끼칠 것이다. 특히 나같이 할부 인생을 사는 미생들은 당장 오늘 죽으면 나의 채무는 누군가에게 짐이 될 것이다. 아 이 슬픈 운명이란.


나는 긍정적인 것인지 아님 속이 없는 것인지 이대로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한 때가 많다. 사실 지금도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해도 별 후회가 없다. 지금 이 마음 그대로 내일도 모레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조금 더 욕심 부려 나의 죽음으로 영향 받을 이들이 조금 덜 아프고 그리고 내가 남긴 것들로 이 세상살이에 조금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이 지긋지긋하다고, 죽을 만큼 고통스럽다며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생이 싫어서 죽기보다 다음 생에 대한 기대를 갖고 죽고 싶다.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할 때에 그런 마음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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