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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Aug 02. 2016

살기 위해 먹는다는 것은 때때로 너무 구차하다

매일 나는 먹는다. 배고프면 짜증 게이지 수직 상승하는 지랄 맞은 성격 때문에 끼니 거르며 다니는 일은 극히 드물다. 많이 먹지도 않으면서 입맛은 또 까다로워 맛있는 것 아님 먹지도 않는다. 매일 먹는 것이 이렇게 지겹지도 않게 지속되는 것이 새삼 신기하다. 하긴 먹어야 살지.


한강 <채식주의자>를 읽고 먹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먹는 것을 거부하는 영혜를 보며 나는 무엇을 먹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끊임없이 먹는지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살기 위해 먹는다는 것은 때때로 너무 구차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잘 먹지 않는다. 내가 가장 저체중이었을 때는 단연 고3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나는 그때 너무 말랐었다. 자꾸 헛구역질을 해서 제대로 먹지 않았다. 그다음으로는 애인과 헤어졌을 때. 그때에도 똑같이 먹지 않았다. 굶어 죽어버릴 심산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결국 먹고 지금 이렇게 살아있다. 사람이 곡기를 끊으면 죽는다는데 나는 아직 죽기엔 아쉬웠나 보다.      


얼마 전 회사 인턴이 개고기를 먹어봤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그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우린 더 이상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너와 내가 친구할 짬밥은 아니다만 그러냐고 하고 넘겼다. 물론 문화가 다르지만 먹을 것으로 우린 다른 카테고리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내가 무엇을 먹는지가 나라는 사람을 규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식탐 있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의 수많은 욕구 중에 식욕은 가장 추한 형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절제하고 싶어도 절제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다 식욕이 극에 달했을 때에 품위를 지키며 먹기란 쉽지 않다.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해영에게 가장 치욕스러운 말은 "너 밥 먹는 모습이 꼴 보기 싫어."였다. 그런 해영을 설레게 한 말도 사랑하는 사람의 먹는 게 예쁘다는 말이었다. 먹는 모습의 묘사 하나로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가 천국에 있는 것처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재밌다. 무엇을 먹느냐만큼 먹는 꼴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믿고 싶지 않아도 내가 먹는 것이 피와 살이 된다. 30년 동안 먹은 것들이 내 몸 곳곳에 남아있다는 말이다. 한국사람들처럼 찌게 하나 두고 여러 사람이 나눠먹는 문화에선 우리가 먹은 것들이 우리 몸 곳곳에 함께 공유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밥 먹자"

"술 먹자"


라는 말을 밥먹듯이 하면서 나는 너와 무엇을 그렇게 나누고 싶었던 걸까.


때때로 먹고 살기가 힘이 들지만 끊임없이 먹고살며 나는 계속 구차해진다. 이 끊임없이 계속될 구차한 일을 누군가와 함께 한다면 조금 덜 외롭고 덜 부끄러울까. 너의 눈에는 그마저 사랑스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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