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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Jul 06. 2016

계속해보겠다.

긴 연휴가 끝나고 다시 출근을 했다. 연휴 동안 여행도 다녀왔다. 언제나 그랬듯이 연휴 마지막 날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므로 노는 날이 지속되면 놂의 상태가 지속되길 바라는 심리가 작용하여 그럴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놀아 봐서 아는데 놂의 상태도 길어지면 별로다.


한국에 있을 때는 주말의 끝, 연휴의 끝이면 그다음 날 처리해야 할 업무들에 대한 일련의 정리가 머릿속에서 이뤄지곤 했다. 지금도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닌데 그때처럼 압박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놀 때에는 확실히 플레이 모드로 놀고 일할 때에는 업무 모드로의 전환이 좀 더 빠르고 명확해졌다고 해야 할까.  


나는 남들이 보기엔 되게 잘 쏘다니고 잘 지내 보인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나는 잘 돌아다니고 그만큼 보고 듣는 것도 많다. 그런데 생각보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 내가 무엇을 봤고 어디에 갔는지 금방 잊어 먹기도 한다. 그래서 내 절친은 "이렇게 까먹을 거면 뭣하러 여행을 다니냐?"고 내게 쏘아붙이기까지 했다. 사실 나는 여행에서 내가 무엇을 먹었고 무엇을 봤는지보다 내가 무엇을 느꼈고 생각했는지에 더 큰 가치를 둔다. 그리고 그것은 잘 까먹지 않는다.


나는 항상 여행의 마지막에 돌아갈 집과 일터가 있음에 감사했다. 내가 항상 최고의 여행으로 꼽는 이태리 여행 마지막 여정이었던 밀라노의 어느 호텔 방에서 나는 내일이면 열댓 시간 비행 뒤에 도착해 여행지에서 그 얼굴들을 떠올리며 산 기념품을 전달할 가족이 있는 집이 있음에, 다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근할 일터가 있음에 무척이나 감사했다. 그 존재들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그래서 나는 바란다. 매일이 여행 같은 삶이 아닌 긴 여행 뒤에도 나를 반겨줄 것들이 많은 삶을 말이다.


아무튼 나는 지금 일의 상태에 다시 진입했고 일해야 한다. 그러니까 계속해보겠다. 이것이 삶이라는 이름을 한 또 하나의 여행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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