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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Jun 15. 2016

회사를 다니며 얻은 것

#토하젓

한 달에 한 번 볼까 말까 했던 부장님은 내가 먹고 싶다던 토하젓을 사 가지고 오셨다. 전라디언 특유의 넉살 가득한 사투리와 함께 내 손에 쥐어진 토하젓. 지나가는 말로 토하젓 먹고 싶다고 했는데 기억해서 사 온 선물을 받고 나는 업무로 찌든 하루를 다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아이스와인

나와 같은 처지의 기러기 아빠였던 이사님은 가족이 없는 빈자리를 취미생활로 채우시려는지 와인을 사모으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신은 이러한 고상한 취미를 가졌다며 내내 힘주어 말씀하셨다. 웬만한 취미생활에는 별로 감흥이 없는 나였다. 하도 자신이 보유한 와인 자랑을 하시길래 나는 또 막 던졌다. "이사님, 저도 그 아이스와인 좋아하는데! 그렇게 많으면 하나 갖다 주세요." 나의 뜻밖의 요구에 당황한 듯 보였지만 나는 그다음부터 이사님이 와인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똑같이 반복했다. "그러니까 그 와인 저도 좀 주세요." 그래서 결국 이사님은 사원 나부랭이인 나에게 면세점에서 사도 5만 원이 넘는 아이스와인을 갖다 주셨다. 아싸.


#공짜밥

나와 같이 직급이 낮았던 동료들은 임원 및 상급자들과 밥 먹기를 극도로 꺼렸다. 체할 것 같다고 했다. 하긴 밥 먹는 자리에서도 이어지는 업무 이야기가 반가울 리 없다. 그런데 나는 꼰대들과 어울리는 것에 큰 거리낌이 없었다. 가끔은 아무도 밥 먹으러 가자고 묻지 않아 약속이 있는 척 혼자 나가는 꼰대들의 뒷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그래서 먼저 묻곤 했다. "상무님, 오늘 점심 콜?" "부장님, 점심 사주세요." 맨날 얻어먹기만 하는 얌체는 아니었다. 가끔 츤데레처럼 커피를 오다 주워온 척 갖다 드리거나 젊은이들만 공유한다는 최신 찌라시도 보내드렸다. 이것이 상부상조 아니고 뭐겠는가?


#공짜술

회사에 세일즈맨이 많다는 것은 술자리도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세일즈를 하진 않았지만 술자리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회식의 요정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회사 돈으로 공짜술을 먹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나는 누가 강요해서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강요한다고 해서 마실 인간도 아니고) 보기 싫은 사람들과 술 먹는 것도 아니니 회식 자체를 아주 즐겼다. 더구나 핫플레이스는 다 꿰차고 있던 나로서는 이 모든 곳들을 내 돈 안 들이고 갈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친구들

나는 사람은 마음만 맞으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 회사생활로부터 깨달은 가장 큰 교훈이다. 그동안의 편협했던 인간관계에서 나는 회사를 다니며 더 폭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아마 회사를 다니지 않았으면 나는 결코 애아빠들, 내 아빠뻘의 아저씨들, 아줌마들 친구는 없었을 것이다.


쓰고 보니 나는 지난 회사생활로부터 얻은 것이 만만찮게 많은 것 같다. 내 추억 속에 고마운 사람들의 추억 속에도 내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으면 하는 작은 욕심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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